[동영상 펌] 5월 26일 청계광장 촛불문화제 강제 연행 현장
26일 18시에 소라광장에 도착해 보니 200-300명도 안되는 시민들이 산발적으로 모여있었다. 일단 급실망.
오늘은 다르리라. 18차까지 왔는데 게다가 어제의 신촌 사태를 보지 않았는가. 많이 씁쓸했다. 아직은 퇴근시간이 되지 않았다. 자조하며 참고 소라 모형 옆으로 제일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7시 30분이 되서야 집행부가 사람들을 정리하고 집회 시작을 알렸다. 거리 곳곳에 있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청계광장쪽 차선들을 막아서 앉기 시작했고 인원은 어느덧 천 명 단위로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더욱 고무적인 일은 우리의 희망인 대학생들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전국대학연합. 서총련 깃발 아래 대학생 천 여명이 합세하고 인원은 5천명을 넘어서 뒤가 보이지 않는 촛불의 물결이 되었다.
매일 해왔던대로 시민논객의 다양한 연설과 집행부의 노래로 어느덧 시간은 10시 집행부의 행사 마지막 멘트가 끝나자 각자 집회에 참석한 모임들 끼리끼리 모이기 시작했고, 가족단위나 친구들과 온 시민들은 잠시 이렇게 끝나는건가 하는 허탈감에 젖어들 쯤 대학생들의 깃발이 움직이며 "행진" "행진" 하는 구호가 들리기 시작했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프랭카드를 바리케이트 삼아 행진은 시작됐다.
행진은 청계천 도로를 꺼꾸로 돌아 롯데를 지나 명동입구 충무로 방향으로 그리고 3호 터널 앞에서 다시 명동성당 방향을 잡고 을지로를 지나 종로로 들어섰다. 그 때 평화 가두 시위 시민들 수는 급격히 불어 있었다. 명동을 거쳐오면서 청계광장 시위에 참석하지 않은 시민들도 다수 가두 시위에 참여 했기 때문이다.
그 수가 8차선 도로 1블럭 이상을 넘어 섯으니 줄 잡아도 1만은 됐던거 같다. 종로에 도착한 시간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11시가 거의 되어 갔던거 같다. 종로 3가에서부터 정경들과 대치하며, 난 맨 앞 우측에 있었다.
한 발씩 밀고 나가는 전략으로 정경들을 밀어 냈다. 맨 뒤에 있던 분들은 앞에서 전경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겠지만 매 순간이 일촉즉발이였다. 전경들은 조금씩 양보하는 듯 시간을 끌며 뒤로 물러서다 종각에 와서야 차량을 이용한 바리케이트 앞에서 진영을 갖추었다.
차량 앞에 선 시위대는 더 나아가지 못했고 이 때 가두에 시위대를 둘러싸고 있던 시민들도 천 여명에 달하는 수로 늘어났다. 어떤 시민들은 물을 어떤 시민들은 음료수를 마시던 것 까지 중앙에 있는 시위 시민들에게 전달하며 관심을 보여 줬다. 내가 도로 쪽에 있어서 내가 직접 받아 전달한 물만도 20개 펫으로 된 것 5개 이상을 포함해서 100여 개가 넘는 분량을 중앙으로 전달하며 버텼다.
그러나 순식간이었다.
12시가 넘어 가며 후미에 있는 시위대는 통제력을 잃었고 지루하게 서있는 과정에서 자연히 흩어졌고 선두 지휘대는 지루한 나아가기 만을 고집하는 시위로 인원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 아시다 시피 1시가 넘어 진압이 시작됐다. 진압은 이미 짜여진 각본 같았다. 이미 검거할 인원을 파악하고 집요하게 달려드는 방법이다. 한 명씩 핵심 인물을 빼어 가고 3명 정도의 중앙 지휘 인원을 연행하더니 일명 토끼몰이 방법으로 도로 사방을 막고 몰아쳤다. 하물며 종로의 뒷골목으로 달아나는 시위대를 짜르고 연행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전경이 도로를 점거하고 시민들이 가두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위 양상으로 전개 되다 전경이 철수하고 제2의 도로 점거와 청계광장 행진 사이에 잠시 방황하다 결국은 청계광장으로 평화행진을 했다.
청계광장에 마지막에 모인인원은 300여 명. 지치고 피곤한 모습이지만 나름대로 오늘 일을 보람되게 이야기 하며 즐겁게 마무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아침 해가 뜨는 새벽 4시 30분 난 피씨방에서 이 글을 쓴다. 하루 동안의 일들을 보태지 않고 쓰려고 노력한다. 그냥 있었던 대로만 쓰려고 노력한다. 무얼 말하고 싶지도 않다. 오늘은 또 하루의 오늘이기 때문에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므로.
그리고 먼저 피씨방에 와서 포털의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다. 어디서도 진정한 보도가 이루어 지는 곳이 없다. 시위 인원보다 더 많은 보도 사진기자들 그들이 취재하고 가져간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그들은 우리 속에서 무엇을 가져가려 했던 것일까?
시위 인원에 대한 언론보도 통제가 있었던 것일까? 물론 눈대중으로 대충 해아린 것과 그들 나름대로의 시각이 있겠지만 처음 모였을 당시와 행진을 시작했을 당시 인원 이야기는 어디도 없다. 300여 명 모였을때 진압했다 뿐이다. 마지막에 종로를 떠나며 청계광장으로 간 인원도 300명은 넘는다. 1만 여명이 행진을 했던 이야기는 어디도 없다.
오늘 진압 과정에서 엠블런스가 2대가 왔다. 부상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시위는 자발적인 국민의 모임이다. 그래서 어설프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만 이 아픔을 안고 가야 한다. 오늘 아픔이 1만 명이면 내일은 2만 명의 아픔으로 2만 명의 아픔이 4천 만의 아픔이 되는 날까지 아파야 할 것 같다.
어디에도 2mb(망발) 단기 대통령직 수행자의 반성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대문에 평화적인 시위만이 답이다는 글이 있었다. 또 한번 실망한다. 가두행진이 마음에 안들면 가슴에 안고 10시에 집에 가면된다.
새벽까지 자신을 버리며 소리치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 나름대로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되면 자신은 그렇게 하면 된다. 다른 이들의 방식까지 자기 식으로 설득하지 말았으면 한다.
오늘 밤에는 또 다른 꽃이 꺾이겠지만 이 꽃들을 꺾은 수에 배가 계속 청계광장으로 모일 것을 기대하며.
다음 촛불을 들며 만날 때까지 서로를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