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단상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후보지명을 마쳤습니다. 작년 혹은 재작년부터 버락 오바마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 일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짝궁이 그러더군요. 오바마는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고, 설혹 대통령이 된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게시판 글 하나가 미국선거에 영향줄 리도 만무하고 이러저런 예측을 한다한들 맞는지 틀리는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하는 것이겠습니다. 어쩌면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화제를 들어보는 것은 우리안의 주류에 어긋나는 생각을 빌미삼아 다양한 시각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1. 세력
대선은 분명 대통령이란 한 사람을 뽑는 절차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후보의 배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들의 시스템이 작동한다. 표면적으로는 정당 혹은 지지자그룹이 될 것이고, 좀 더 추상화시켜보면 "세력"이란 단어로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선은 공약으로 표출되는 "이념"과 "방법", 후보로 표출되는 "정체성"과 "상징", 지지그룹으로 표출되는 "시스템"과 "세력"이 경합하는 자리다. 대선을 대통령교체라 하지 않고 정권교체라고 하는데는 그마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후보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세력-인적네트워크의 교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마음을 이끌 공약을 만들고 후보를 잘 선택하는 것 못지않게 세력의 역량이 한 정권을 인수하기에 충분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럴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2. 민주당 경선
작년 이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인들과 미국대선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었다. 모두들 오바마의 성장과 민주당이 정권잡을 가능성에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당시 나는 좀 달랐다. 민주당은 최선의 상황에 최악의 후보를 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힐러리는 여성이고 오바마는 흑인으로 둘 다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 다 진보정치에 걸맞는 아이콘이지만 그것을 제외하곤 두 사람의 이력이 너무 차이있었다.
우선 힐러리는 퍼스트레이디였고 남편과 함께 16년 전 집권해서 8년간 미국의 심장부에서 정치활동을 했다. 반면 오바마는 시민운동으로 성장한 초선의 상원의원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 점은 두 사람을 지지하고 움직이는 세력의 구성에 현저한 차이를 만들 것이다. (그 외에도 남-여, 흑-백, 생활층 등등의 차이 때문에 두 사람이 융합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물론 두 세력을 포괄하는 민주당이란 시스템이 있지만 힐러리를 부통령으로 지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민주당의 후보지명 때처럼 앞으로 민주당이란 시스템으로 통합된 세력의 모습을 갖춰가는 것은 미국의 정당시스템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하나의 잣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오바마가 선전하는 상황에서 나는 힐러리를 부통령으로 지명하지 못할 것으로 봤다. 대선 후 정권을 상상할 때 안정감을 줄 수는 있지만 오바마 진영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거물이기 때문이다.
3. 불만과 불안
정책에 실패한 정권은 심판받는다. 그러나 꼭 심판받는 것 만은 아니다. 정책에 실패하면 국민의 불만이 증가하지만, 동시에 불안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불안이 커지면 국민은 심판을 주저한다.
미국의 모기지 사태라던가 전세계 반미기류는 미국의 경제정책 외교정책의 잘못에서 기인한다. 이 때문에 미국민들은 불만을 가지고 있고 대선에서 표로 표출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허나 대공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미국고립에 대한 두려움 또한 커져가는 것이 사실이다. 불안이 증폭되면 사람들은 도약하기 보다는 제자리에 멈춰서게 마련이다. 밀리면 죽는다는 불안이 있을 경우 사람들은 공격적이 된다. 그리고 슈퍼맨 같은 강한 아버지를 원한다.
(최근 미국에선 연일 시위가 일어났다. 뉴스를 타고 흐르는 시위와 경찰간의 싸움은 메케인에게 유리하지 오바마에게 유리하지 않다. 시위가 격렬할 수록 변화에 따른 불안감이 증폭될 것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의 탄핵반대 촛불시위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이다.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걸맞는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공화당은 철저히 오바마의 체급을 경량급으로 낮추고 불안정한 정치인이라는 공세형태를 취할 것이다.
변화를 강조하는 오바마에게는 "안정적인"이란 수식어가 필요하다. 그 수식어는 "세력"에서 나올 것이고 "세력"은 지지그룹의 실체로부터 나온다. 오바마의 연설은 감동적이었지만 그 안에는 미국민들의 자화상이 들어있을 뿐 그 시스템을 이끌어 갈 "세력"의 모습을 형상화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칠십년 전 루즈벨트와 사십년 전 케네디? 노사모도 없는 오바마에겐 안습이다.
4. 대결구도
공화당 지명대회에서 페일린은 오바마를 공격했고 메케인은 미국과 공화당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부통령 상대감으로 낮추고 자신은 그 위에서 독주하려는 전략이다. 이 전략 하에 메케인의 연설은 공화당을 미국과 동일시하고 있다.
페일린 딸의 스캔들이 과연 공화당에게 악재였을까? 악재였다면 왜 초기에 진화하지 않았을까? 내 보기엔 페일린을 언론의 중심에 서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페일린의 스캔들을 입에 올린 사람들은 일종의 부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바마는 메케인을 향해 10%의 변화만으론 부족하다고 했지만, 페일린은 오바마를 향해 자서전을 두 권 쓴 사람이 법안은 하나도 없다고 공격했다. 어제부터 오바마가 페일린을 공격한 모냥이다. 제대로 말려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오바마는 힐러리와 치열한 경선을 해야 했다. 민주당 경선과정은 그에게 여자와 싸우는 사람이란 이미지를 형성했다고 본다. 페일린을 건드리면 미국인들은 민주당 경선을 떠올릴 것이다. "여자 부통령후보와 싸우는 남자 대통령후보" 이게 오늘의 오바마다. 오바마는 부통령 감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기사도도 없고 배려도 없는... 여자와 싸우는 치졸한 남자의 이미지, 페일린이 망가질 수록 오바마도 같이 망가질 것이다. 오바마가 날선 비판을 할 수록 페일린은 약자로 자처하고 페일린은 자신의 공격에 여자의 저항 이미지를 덧씌울 것이다. 그녀는 그래도 된다. 부통령 후보니까.)
(진보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 "이성"에의 동경이 있다. 이성이 첨예하면 그래서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배려가 줄어든다. 민주당의 이념은 자상한 어머니상이다. 그 위에 이성의 잣대를 손에 쥐고 날선 공격을 하다보면. 자상한 어머니가 상처입는다. 그럼 민주당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페일린은 바이든이 나서야 할 상대였다. 점잖은 어른이 말괄량이 소녀 타이르듯 했어야 하는건데... ㅜ.ㅜ

5. 세력
대선에서 후보는 아이콘이다. 상징이고 이념의 결정체다. 그러나 상징과 이념만으론 국가를 경영하진 못한다.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정권을 유지할 지지세력과 운영할 시스템과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세력이란 표를 얻어내는 선거조직이나 지지자층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곧 든든한 인력풀과 그 인재들이 형성한 안정감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국민에게 세력을 확인시켜주지 못하면 선거에서 질 뿐만 아니라 설혹 선거전에서 승리했다손 치더라도 집권기간 내내 분란에 휩싸이게 된다. 지금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어떻게 안정감있는 세력을 형성하고 그에 따른 구도를 만들지의 여부다.
민중의 힘으로 역사의 물꼬를 바꾸는 데에는 지난한 희생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가 쌓여야 한다. 설혹 일순간 민중이 역사를 바꿔놓았다 하더라도 그 기회를 활용할 세력이 없다면 보다 큰 반동을 맞이해야 한다.
짝궁의 우려는 바로 여기에 방점을 두고 있다. 미국이란 덩치를 받기엔 오바마를 떠받치는 세력의 허리가 부실한건 아닌가... 너무 대중에만 기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나는 의견이 좀 다른데 설마하니 이백년 이상을 양당체제로 가져간 미국의 민주당인데 그마만한 허리가 없겠냐 하는 생각이 있다.
여튼 앞으로를 대비할 우리도 생각할 점이 많은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