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학이 어떻게 민주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제대로 된 수학 교육이 어떻게 민주시민의 자질과 덕성을 키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말입니다. 저는 수학교육만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른 학문을 통해서도 이러한 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러한 부분은 그 분야에 익숙한 분들에게 맡겨 두도록 하고 저는 수학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수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을 미리 조금 말해두는 것이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느 분야나 비슷한 측면이 있겠지만, 수학에서는 논리도 근거도 없이 주장만 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옳은 증명이 있다면, 납득하지 못하는 다른 이를 설득하기 위해 끝까지 맞다고 우기지 않아도 됩니다. 다수결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어느 것이 참임을 선언할지라도, 증명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수학의 역사를 통털어, 단 하나의 정리도 다수결에 의해 증명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까지만 이야기하면, 수학이 굉장히 불관용적이며 비타협적인 태도를 가르치므로 민주주의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됩니다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수학의 이러한 엄격한 성격은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적용되므로, 권위를 가진 이의 주장도 증명이 없으면 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역으로 아무런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은 보잘것 없는 이라도, 옳은 증명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가 참으로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수학의 성격들을 바탕으로, 민주시민의 어떠한 자질과 덕성을 키우는데 수학이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를 하나하나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수학은 남의 말을 들은대로 믿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사유를 통해 차분하게 검토하는 태도를 가르쳐줍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근거가 없는 주장이나 소문이 쉽게 퍼져나가는데 취약해졌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렇게 퍼져나가는 소문때문에 사회 전체가 패닉에 빠지는 면도 종종 관찰됩니다. 뜬소문이 쉽게 퍼지고 또 그것을 쉽게 믿어버리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것들의 정당성을 검토하는데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학의 증명을 읽고 검토하는 것과 같은 성실한 자세를 배우는 것은 이러한 병폐를 막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사회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성실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주술처럼 외우던 한국 사회는 그 명제의 타당성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역으로 지금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뭉뚱그려서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근거에 기반하는 사유의 태도는 또한 사람이 쉽게 감언이설에 휘둘리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한국정치의 문제로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선심성 선거공약의 남발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일례로 경제 살리는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성공하신 분이 있습니다만, 사실 부자들 세금은 줄여주고, 서민 복지는 늘려주겠다는 주장은 거의 물리학에서 열역학법칙을 거스르는 영구기관이 발명되었다는 것에 맞먹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정책이 있다면 이것을 영구정책이라고 하는게 좋겠습니다. 노공이산님께서는 얼마전 보수의 거짓말로 다음과 같은 명제들을 정리하신 바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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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감면하면 경제가 성장한다. 성장만 하면 일자리가 생긴다. 성장하면 모두가 잘 산다. 정부가 작아져야 국민들이 잘 산다. 규제를 풀어야 국민이 잘 산다. 민영화하면 공공요금이 내려간다. 시험 잘 치는 사람이 똑똑하다. |
한번쯤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주장들이라고 보여집니다. 앞으로도 계속 유권자들이 달콤한 주장만을 쉽게 받아들이면서, 성실하게 그 주장의 근거들을 검토하는데 소홀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여기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스로 증명을 검토해야 하는 수학의 성격은 의심하는 태도를 기르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의심한다는 것은 나쁜 의미로 쓰일 때도 있지만, 합리적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사정부와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국가 주도의 교육은 질문하지 않고, 고분고분한 인간을 기르는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나라에 충성해 줄 말 잘듣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고, 교육을 통치 대상으로서의 국민을 다루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는 확실한 사실은 모두 기존의 생각과 권위에만 순응하고 말 잘듣는 사람들만 있다면, 그 사회는 번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생각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탄압받아야 했던 지동설과 진화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만, 이러한 생각들이 권위에 밟혀 그대로 묻혀져 버렸더라면, 인류는 지금쯤 어디에 와 있을까요?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의심하는 개인들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커다란 선물입니다. 사회의 번영은 의심하는 개인들을 포용할 줄 아는데서 시작됩니다.
수학의 성격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태도를 기르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한국이 너무 급변하는 사회이다보니, 어떤 문제를 마주하고 있을 때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가져다 주는 문제 해결 방식이 지지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만은, 이러한 방식은 종종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미뤄둔채, 폭탄을 남에게 돌리는 것과 같은 방식이 되기 쉽습니다. 어떤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인지의 판단력을 기르는데 있어서도 수학교육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토마스 홉스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홉스는 젊은 시절부터 수학에 익숙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그가 나이 40일때 도서관에서 유클리드의 원론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고, 거기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봤다고 전해집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홉스는 책읽기를 계속하는데, 그 증명이란 앞에서 이미 증명된 정리들을 사용한 것일테죠. 결국 책을 거꾸로 읽어가며 맨 처음에 도달하게 된 홉스는 그제서야 피타고라스 정리의 진실성을 받아들였다는 일화입니다. 이 원론이라는 책은 고대 그리스에서 쓰여진 것으로, 필수적인 용어에 대해 정의를 하고,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명제를 참이라고 약속한 다음에, 그러고 나면 필연적으로 참이 되는 명제 즉 '정리'들을 끌어내는 형식입니다. 홉스가 여기서 배운 것이 적지 않았는지,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그 논지를 꼭 수학책 원론처럼 전개했다고 합니다.
수학의 진리성이 어떻게 얻어지는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주어진 문제의 해결을 단지 해결되어야할 또 다른 문제로 대체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본질적으로 해결한 것인지를 구분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서 수학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찾는 태도를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정부가 집권당시 주장하면서 내세운 것들을 왜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했느냐를 놓고 많은 비판을 합니다. 반대세력을 물리치지 못하고 강력한 추진을 못했기 때문에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은, 그러한 방식의 정치에 대해 절정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지금 정권을 보면서도 그 주장이 옳다고 주장할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어느 한 세력을 배제한 집권세력만의 강력한 추진력만이 진보를 이루는 해결책일 것인지, 저는 이러한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폭탄돌리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의심하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모두가 거기에만 그친다면 아무런 진전이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주의 깊은 사색을 거쳐, 균형있는 근거를 찾아내어 얻어진 것이라면, 그 결론이 아무리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수학은 때때로 믿음과는 다른 이상한 결론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르치는데 있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가령 옛사람들은 행성이 태양 궤도를 돌고 있다면, 그것은 원의 궤도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었습니다만은, 수학은 그 궤도가 타원이라는 사실을 보여줄뿐 아니라, 그것이 이상해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말해줍니다. 플라톤은 '국가'에 통치자를 기르기 위한 교육을 말하면서,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교육을 받으면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철인이 될 수 있다며, 여성의 교육이라고 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견해를 펼쳤습니다. 플라톤의 수학적인 사유방식이 당시의 편견들을 물리치고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합리적인 견해에 대하여 정파적인 고려를 우선하지 않는 자세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수학은 모호한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의 진리성은 사실 동어반복이라는데서 기원합니다 . 버트런드 러셀은 '수학이란 같은 것을 다른 말로 얘기하는 예술(기술)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수학적 진리가 참인 이유는 수학이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참인 것을 일단 참으로 받아들인 다음부터 같은 말을 계속 다른 말로 바꾸는 수학의 속성에 있습니다. 수학의 이러한 점을 명확하게 이해한다면, 역으로 현실 세계에 대한 명제들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이해하고 견딜 수 있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불확실한 부분에 대해 불확실함을 인정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자세는 민주주의에 꼭 요청되는 것입니다. 연역적 사고는 그 사유체계에 논리적 일관성과 체계성을 부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교조적인 사고에 빠질 위험성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정치 영역의 주장이 수학의 세계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명료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정치적인 논증이 정교하게 보일지라도, 그러한 논리의 근원을 따져 올라가다보면 분명 개인적인 선호나 믿음을 마주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서로의 불확실함을 인정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상 수학교육이 민주주의에 긍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부분들을 열거해 보았습니다. 학교의 수학시간은 단지 수학지식뿐만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덕성을 기르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결론은 수학이 킹왕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