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편향? 금성교과서로 현대사 배운 학생입니다.
다음아고라ㅣ2008.12.8ㅣiron mask™
요즈음 금성출판사를 비롯한 5개 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 많다. 맨 처음 수정 '권고'로 시작하였던 것은 이제 수정 '지시', '명령' 이 되어 각 출판사에 전달되었고, 나랏돈을 들여 소위 '바른 역사관과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한' 특강이 수도권 수 개 고교에서 강제로 시행되었으며, 급기야 '건국 60주년 기념' 비디오가 교육청 주도로 각 학교에 수업자료로 배부되기에 이르렀다.
상술한 비디오의 내용은 가히 가관이다. 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87년 6월 민주항쟁은 아예 나오지도 않고, 6.15 남북 정상회담은 빼놓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사업은 비디오의 자켓 이미지로 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헌법 전문에도 언급하고 있어 그동안 극우진영에서도 감히 건들지 못하는 '성역'이었던, 4.19혁명 마저도 학생들의 '데모'로 폄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 비디오 관련으로 이야기가 샜는데 각설하고, 이 모든 문제의 발달이 된 근현대사 교과서, 그것에는 정말로 좌편향적인 기술이 되어있는가?
우선, 나는 문제가 되는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로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를 배운 학생이다. 그리고 아마 과반수 이상의 고등학생들이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로 근현대사를 배웠을 것이다. (현재 근현대사를 과목으로 채택한 고등학교 중, 51%의 고등학교과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 교과서로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느낀 적이 있는가? 최소한 내 주변에서는 없었다. 소위 서울 강남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주변 아이들이 대부분 부모의 영향을 받아 보수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진보신당을 '빨갱이당'라고 부를 정도로)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말하는 학생은 단 한명도 없었다.
혹여 고등학생들이 잘 몰라서 그렇다고 한다면 현대의 아이들을 너무 무시하지 말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다. 고3때, 우리반에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을 읽었던 학생이 네 명이었고, 한쪽의 논거만 보는 것이 마음에 안든다며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까지도 읽어버린 학생도 있었다. (나는 '인식'만 읽었다.) 리영희 교수의 '우상과 이성'을 읽은 학생도 두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꼭 이러한 유명한 책들이 아니더라도, 수 차례 TV와 인터넷에서 접하는 수 많은 근현대사 정보들 만으로도, 고등학생쯤 되면 최소한 자신만의 역사인식이 서있기 마련이다. 고등학교에 와서 근현대사를 처음 배우는 것도 아닐진대, 학생들의 '무식함'으로 모든 것을 돌려버리는 일은 정당하지 않을 것이다.
논거가 조금 경험론적으로 흘렀는데, 그렇다면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실제로 구체적인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선, 제일 자주 지적받는 미군의 '포고령'과 소련군의 '포고문'을 실어놓은 부분을 짚어보자. 둘의 내용은 이미 모두 잘 알고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넘어간다. 약술하면, 포고령은 '조선국과 조선인민에 대한 통치의 모든 권한은 본관(맥아더)에게 귀속된다'는 내용이고, 포고문은 '조선인민들이여, 자유를 즐겨라' 이러한 내용이다. 여기서 교과서 포럼이나 뉴라이트 등에서 지적하는 것은, 이 성격이 다른 두 가지의 사료를 같이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연스레 반미감정을 갖도록 유발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첫째로, 이 두 사료는 없는 사실을 지어내어 만든 사료들이 아니다. 엄연히 미군과 소련군이 저러한 내용으로 포고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 '조선 인민들에게 포고한다'는 본질적인 포고 이유가 같은 만큼, 함께 소개하는 것이 전혀 어색한 것이 아니다.
둘째로, 저들은 '두 개의 사료를 비교하도록 함으로써 자연스레 반미감정을 갖도록 유도한다'고 하였는데, 교과서를 제대로 읽어보기는 했는지 의심스럽다. 우선 이 사료가 제시된 탐구문제에는 '두 사료를 비교하라'는 내용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지 않으며, 두 사료를 함께 제시한 이유도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미군과 소련군, 두 군정의 통치방식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서라고. 미군정은 우리나라에 대해 직접통치 방식을 취했고(하지 중령이 직접 우리나라에 대한 통치를 담당하였다.), 소련군정은 김일성을 꼭두각시 대리로 내세워 간접통치 방식을 취했다는 것을 이 사료를 보면서 학생들이 알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게 반미감정을 고취시키는 일인지 정말 의문이 든다. (이상의 내용은 12월 5일 방송된 MBC 백분토론에서 금성교과서 대표 집필자가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북한의 천리마운동은 자세히 기술하고,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은 독재정치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적 의미만 강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혹시 금성교과서를 지금 가지고 있다면 펼쳐보라. 천리마운동과 새마을운동의 기술은 그 분량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 금성교과서는 새마을운동을 설명하는데에 천리마운동을 서술하는 것보다 배의 공을 들이고 있다. 물론 독재정치 강화의 수단적 측면이 제시되기는 했지만, 이것이 거짓인가?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이 어느정도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어두운 면도 분명히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근현대사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서울대학교 이영훈 교수로 대표되는, 근현대사에 밝은 척 하는 정신나간 경제학자들을 제외하고.)
하나만 더 들어보도록 하겠다. 백분토론에서도 제시되었던 부분인데,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에는 인민군의 민간인 학살은 단 하나만 서술되어 있고, 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세 개만 제시되어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기술의 내용을 보도록 하자. 금성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국군의 학살은 세 가지 이다. 거창양민학살, 노근리학살, 보도연맹사건 근현대사를 조금이라도 안다고 하는 사람 중에 이 세 가지 사건을 모르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인민군의 학살로 제시된 것은 대구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이 학살사건은 학자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세 가지 학살사건과,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 가지 학살사건의 소개, 무엇이 더 비중이 큰 것인지 그들은 정녕 알지 못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소위 '근현대사 특강'에 대해 한번 짚어보자.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었다시피 하지만 다시한번 떠올려보면, 교육청 주도의 '근현대사 특강'의 강사는 거의 대부분이 보수측 인사들이다. 학생들에게 '중립적인 역사관'을 심어준다면서, 그야말로 '편향된' 인사들로만 구성된 강사진으로 특강을 강압적으로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그 '중립적인' 인사들이라 하는 강사들 속에,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까지도 껴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단지 아연할 뿐이다.
하나 다행인 것은, 강사들이 우편향이긴 하지만 다소 '무식하다'는 것일까. 특강에 나섰던 강사들이 명석한 고등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려버린 일이 많았다는 사실은, 그나마 우리에게 한 가지 희망을 안겨준다.
맺으며,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 싶다. 그들은 현재 우리나라 근현대사 교육이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훼손'하는 '반대한민국적'인 교육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나는 현재 우리나라 근현대사 교육처럼 바른 교육이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암울한 역사다. 구한말에는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시달렸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 시달렸던 식민지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해방 이후에도 강압적인 독재아래 수 십년 동안 신음해왔다. 경제발전이 자랑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제 때에 물러나기만 했다면 민족의 영웅'이라고.(→ 이 말은 박정희의 공은 인정하나, 결국 물러나지 않고 독재정치를 펼쳤기 때문에 절대 영웅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난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이루어낸 성과를 부정하지 않으며, 현재 우리나라의 발전을 보며 가끔 감사해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가 공포의 독재정치를 폈던 것은 사실이고, 그의 손에 무수한 국민들이 피를 흘렸던 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찬란한 역사만 부각하고 어두운 역사를 덮어버리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역사관인가? 그렇다면, 일본 극우파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전 총리의 역사관과,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의 역사관에서 공통점을 발견하며, 조금은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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