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에서 논술을 지도하시는 어느 선생님에게 들은 얘기.
별로 말수가 없는 아이. 남들이 토론할 때면 거의 듣고만 있던 아이. 느릿느릿 말해서 토론대상이 되기조차 어려웠던 아이.
한번은 분유훔친 엄마의 유죄, 무죄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아 참! 초등 5학년들 얘기다. 모두 돌아가면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생각 외로 ‘일단 죄는 죄로 다스려야 한다’, ‘도둑질은 나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무죄다’라고 주장하는 어느 여학생도 만만치는 않았고...
그런데 평소에 별로 말이 없던 그 아이가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애기는 어떻게 되었죠? 우유 먹었어요, 못먹었어요?”
이 대목에서 논술 선생님은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껏 한없이 작게만 보이던 그 아이가 점점 커지더니 선생님 눈에 한 가득 큰 사람으로 다시 들어오더라고...
“먹었다더구나”
논술 선생님은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럼 죽지 않은 거네요, 휴!”
논술 선생님은 그날 그 아이에게 최고의 토론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잘못된 가설, 잘못된 전제 위에 얼마나 쓸모없는 논쟁들이 소모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그렇다. 정작 우리는 우유를 훔친 어미의 유, 무죄에만 관심이 있고 여기에만 열을 낼 뿐이지 정작 우유가 없이는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아이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새까맣게 잊고 사는 것이다.
신문을 안본지가 오래 되었다. TV는 어차피 뉴스시간대에 직장에 있는 터로 볼 처지가 못된다. 그래도 알 것은 다 안다. 모르고 싶다고 모를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용산참사 소식을 듣고 처음엔 경악했고 그 다음엔 미어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 다음엔 분노했다. 지금은? 어이없을 뿐이다.
좋다, 백번 양보해서 철거민들이 말이 안되는 무리하고도 무리한 주장을 했고, 그들과 전철연은 못된 무리의 한통속이며 정말로 이세상의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그런 존재들이라고 치자. 과연 지금 이 시점이 그 문제를 논해야 할 시점이란 말인가? 과연 그들의 죽음 자체가 이런 논의하에 묻혀도 좋을 만한 하위명제에 불과하단 말인가?
무엇을 논해야 할지, 무엇을 따져야 할지 그런 것도 모르면서 정작 그들의 죽음은 온 데간데 없고 법질서만을 운운하는 미친 집단들,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바보같은 사람들... Black Comedy라는 용어 그대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미친 군상들... 교통신호를 어긴 사람은 차에 치어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해할 수 없는 무리들...
사람의 죽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의 생명은 법질서에 대한 그 사람의 준수여부 따위 보다도, 그사람이 저지른 어떠한 인간적 잘못이나 도덕적인 결함보다도, 그사람의 어떠한 치명적 실수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존귀하고 소중한 것이라서, 그 어느 누구도 값싸게 죽을 수 있는 비천의 의무를 갖고 있지 않다.
철거민들의 주장의 옳고 그름 보다도, 그들 투쟁 방식의 옳고 그름보다도, 철거정책 자체의 합리성 여부 자체에 대한 논의 그 어떤 것 보다도, 그 밖의 모든 것 보다도, 지금은 그들의 죽음 그 차제만을 절절이 사죄하고 또 사죄하며, 가슴속에 녹여야 할 그 어떤 것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아무리 가슴을 풀어헤치고 그들과 같이 울고 통곡해도,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감싸안아도, 부족하고 또 부족할 판에, 법질서 따위를 운운하는 저 미친놈들과 한 시대를 살아야 하는 작금이야말로 한 시 빨리 헤쳐나오지 않고는 내가 견딜 수 없는 오욕의 진흙 구덩이 속임에 틀림없다.
서프라이즈 펌 /원문 주소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8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