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전에 '20대가 광장에 나오지 않는 이유'(※ 이 글과 관련된 글이므로 왼쪽 제목을 클릭하여 먼저 읽으셔도 좋습니다 - 편집자)라는 기신님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22살인 제가 봤을 때 공감이 가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몇 달 전에 제 블로그에 썼던 내용과 지금의 감정을 덧붙여서 솔직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작년 촛불집회 때부터 '20대'를 향한 비판이 많았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며 도전정신은 약하고 안정적이고 편한 것만 하려 한다는 것이 주된 비판의 이유라 생각됩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촛불을 들고 거리를 배회했던 사람으로서 그들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소위 '88만원세대'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과한 비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88만원세대'를 향해 '88만원세대'의 저자인 우석훈은 짱돌을 들라고 했지요. 모든 사람들이 연대해 사회문제를 타개하라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토익책을 버리고 짱돌을 들어야 될까. 그런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첨맘님은 대학면접을 보러 갔을 당시 교수가 이렇게 물었다고 하지요.
"학문은 현실과 완전히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학을 다니다 보면 사회적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럼 자네는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학문인가? 아니면 부조리와의 싸움인가?"
당시의 첨맘님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자 교수는 "쉽게 말해서 데모를 하겠느냐 안하겠느냐 그말이야"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당시를 회고하면서 첨맘님은 대학생활의 첫 해를 '실망과 환멸의 시기'라고 표현했지요.
지금 저의 대학생활을 생각해봐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민주화가 정착되어(누구 때문에 거꾸로 가고 있기는 하지만) 교내에 사복 입은 경찰이 돌아다니지도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대학교가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닌 취업을 위한 공부의 장이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자주적인 인간으로서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 배후세력은 양심이라며 수없이 촛불을 들면서도 한편으로 가슴 한 구석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음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이때 '2009년 대한민국에서 대학생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첨맘님의 대답은 저에겐 어느정도 해답이 되어 주었습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에요."
"왜냐면 우리가 세상에 나온 이유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니까. 그런데 세상에 너무 불의한 일들이 많아서 나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양심에 거리낀다면 사회에 참여하는 거에요. 이건 동서고금의 모든 사회가 다 그랬죠. 사회 불의가 나의 행복한 삶과 양립할 수 있다면 그대로 사는 것이고."
"즉,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에 달렸고 기준이나 정답은 없죠. 양심을 수치화 할 수 없으니까."
"대학생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인생이에요."
"앞으로 70년이나 살아야 하는데, 자기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게 대학생 때 할 일이죠. 능력이 큰 학생은 봉사나 투쟁을 하는데 시간을 쪼개 할애하는 거고, 자기 삶도 꾸리기가 벅찬 학생은 양심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하면 되는 것이고. 학교를 다니면서 어렵게 아르바이트하고, 그 돈으로 다음 학기 등록금 내야 하고 그런 학생한테 '왜 너의 행복만 위해 애쓰냐'고 비판할 수 있을까. 일반론적으로 ‘대학생이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는 것은 없어요."
저는 첨맘님의 이 말이야말로 오늘날의 20대를 둘러싼 논쟁에 있어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이 있지요.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만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
386세대는 386세대만의 아픔이 있고 88만원세대는 88만원세대만의 아픔이 있습니다. 이해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386세대를 논할 때면 조심스러워집니다. 386세대가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 많은 공헌을 하시고 희생하신거 인정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386세대가 기득권이 되고서 도대체 무엇이 변했나요? 우리에게 지금과 같은 세상을 그대로 물러준 것은 386세대가 아닌가요?
20대를 비판하기 이전에 386세대의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친구들이 이런 말을 참 많이 합니다.
"대학 친구들은 정이 안가. 고등학교 친구들이 좋았는데."
입시지옥을 넘어 온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취업지옥입니다. 그래서 대학 캠퍼스에는 '사람냄새'가 사라졌습니다. 알바해서 등록금 벌어가면서 시험공부하고 어학공부하고 하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책임감' 때문입니다.
제가 앞에서 언급한 첨맘님의 말에 유일하게 토를 달고 싶은 부분은 그 '자기인생' 이라는 것에 사회현실이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사회불의가 자신의 행복한 삶의 장애물로 분명히 작용하니까요.
그러니까 대학생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학문, 자기계발'과 '저항'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 지금 대학생들이 처한 현실은 너무 각박합니다. 그래서 앞서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과한 비판이라고 한 것입니다.
기신님은 20대가 광장에 나오지 않는 이유의 하나로 광장경험의 부재를 언급하셨는데 그럼 마찬가지로 광장경험이 없는 중, 고등학생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중,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나오기 때문에 눈에 띄어서 그렇지 대학생들의 집회참여도 결코 적지는 않았습니다.
각 대학 총학의 시국선언 뿐만 아니라 개별적으로도 삼삼오오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20대의 투표율이 저조했던 것에 대해선 저도 참 참담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일들로 인해서 몸소 많이 깨우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주변의 친구들만 해도 그렇구요. 다음번 선거 때부터는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봅니다.
그리고 기신님의 글에 보면 현재는 80년대에 있었던 이른바 '의식화교육'을 할 선배도 거의 없어서 배운게 없는데 뭘 보고 나서겠냐는 말이 있더군요. 묻고싶습니다. 왜 '의식화교육' 따위를 받아야 되죠?
현 20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자유로움을 추구합니다. 선후배관계도 굉장히 수평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주입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 경험을 통해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을 통해서 움직입니다.
저는 우석훈을 싫어합니다. 그는 우리를 '88만원세대'라는 불쾌한 이름으로 규정지었기 때문입니다.
'88만원세대'라는 이름 앞에 우리의 모든 가능성은 억압당했습니다.
386세대와 88만원세대를 나누고 또 88만원세대와 촛불세대를 나누고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받고 반성해야겠지요. 하지만 '가능성' 만큼은 억압하지 말아주십시요. 그리고 아픔의 무게에 저울추를 달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