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 성지순례 후기
많은 분들이 찍어주신 사진을 함께 모아서
주말 서울하늘은 먹구름이 잔뜩하고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빗줄기가 새벽부터 뿌려댑니다. 노짱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보고픈 당신을 찾아가지만 더 이상 당신의 모습은 없고 당신의 그 숱한 흔적들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왔다가 가버리는 파도가 아니라 영원히 우리의 가슴에 남아있는 당신. 낮이면 우리를 비추어주는 해처럼 밤에는 길을 안내해주는 달처럼 낮이나 밤이나 당신의 기억이 우리와 함께 하기에, 당신의 흔적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설레고 발길은 가볍습니다.
아침 7시, 곧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신촌과 잠실에서 3대의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중부 만남의 광장에서 3대의 차가 모이고, 도영사랑님과 일상에서님 그리고 산희님이 협찬해주신 간식거리(잘 먹었어요 협찬해주신 회원님들 고맙습니다)와 서울광장에서 준비한 김밥과 우의를 각 차에 나누고 준비한 현수막은 차에 단단히 붙인 후 봉하로 출발합니다.

이겁니다. 버스 3대에 붙이고 간 노짱님 현수막. 떼고 난 뒤라 조금 접힌 자국이....
봉하로 가는 차안에서 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기 소개보다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노짱님을 그리워하는 분, 분노에 치를 떨며 꼭 복수하겠다는 분, 남아있는 우리의 역할이 크다, 역사는 승자가 기록한다, 우리가 꼭 승리해서 우리 노짱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게 하자, 다짐들이 이어졌죠. 그리고.... 김반장님이 준비해준 노짱님 동영상을 시청하며 조용히 봉하마을로.
오후 1시를 조금 넘겨 드디어 봉하마을 도착. 하늘도 서울광장을 반겨주는지 봉하에는 비도 오지 않고 초여름 뜨거운 해도 비켜가고 간혹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반겨주시는 노짱님의 배려같더군요.
정토원으로 올라갑니다. 길이 가파르고 약간 험하지만 시민들의 발길은 연일 끊이지가 않습니다.




봉화산 안내 이정표가 이채롭습니다. '부엉이'를 '부흥이'라고도 한다는거 처음 알았네요. 옆에 어떤 분이 써놓은 글 보이세요?
조금은 힘들게 산을 오르고 드디어 정토원 입구. 노란색의 큼지막한 바람개비들이 우리를 기다렸다는듯 시원하게 돌고 있습니다.




내려다 보이는 봉하마을. 저 사저에 노짱님이 계시지 않는다 생각하면 그저 가슴이 서늘할 뿐 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벌써 여러 날 동안 자원봉사단장으로 수고 중이신 대구광장 우물지기님으로부터 꼼꼼한 안내의 말을 경청한 후, 노짱님이 계신 그곳에 참배를 드립니다.

땀을 흘리며 열심히 설명하시는 우물지기님. 그날, 여러가지로 많이 챙겨주신 우물지기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며 두 손 모아 정성들여 절을 합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울어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저도 모르게 또 흐르네요. 한 분은 참배 후 무릎을 꿇은 채 한참을 오열합니다. 그분을 향한 애틋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해만 가는 걸까요.

정토원 마당에 모여 원장이신 선법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서거 100일째 되는 날에는 서울에서 추모행사를 했으면 좋겠다, 시민광장에서 많이 와줘서 고맙고 떡도 준비해줘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이어서 저와 송파 성동 대표님, 그리고 촌사람님까지 잠시 짧은 이야기 마당이 이어졌습니다.


정토원 참배를 마무리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첨맘님의 '서울역 분향소에서' 현수막입니다. 그곳에 계신 분 말씀이 이 현수막 설치 후 조그마하던 죽순이 갑자기 엄청 빨리 자라났다고 합니다.

정토원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 현수막을 묶었습니다. 이제 산을 내려갑니다.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하염 없는 안타까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다들 바위 위를 한번씩 올려다보게 만드는.... '그 자리'



'그곳'에서도 똑같이 했습니다. 큰 절을 두 번씩 올리고 현수막을 또 하나 묶었습니다. 다른 곳들과는 달리 현수막이 없는 곳인데 꼭 드리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날 이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쳤습니다. 그 미안함이 더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는 당신을 지켜내지 못했는데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이 우리를 지켜주려 하셨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노짱님, '당신이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편안히 쉬십시오.


자원봉사를 위해 봉하마을 주차장에 모였습니다. 워낙 많은 분들이 다녀가면서 쓰레기 처리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이기에 청소는 처음부터 작정했던 것인데, 이곳저곳 기웃거렸지만 다른 일거리를 더 얻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지난 2월, 서울광장의 '노짱님 귀향 1주년맞이 봉하방문' 때 연지 주변에 함께 영산홍을 심었던 김정호 비서관님도 그러더군요. '이번에는 봉하를 잘 둘러보셔라. 오리농사 현장도 한번 보면서 생태마을 봉하를 잘 느껴보셔라' 하시더라구요.
봉하를 눈과 가슴에 잘 담아서 널리 알리는 것도 훌륭한 자원봉사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장군차밭과 오리무논 쪽을 돌아다니며 봉하 생태마을 체험(?)도 하면서.... 봉하마을 구석구석 청소하기.... 그것만 열심히 했습니다.



마지막 현수막을 마을회관 옆 '봉하광장'에 묶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노란 풍선더미와 함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고있는 봉하분향소 주변 모습입니다.

개성고가 준비한 현수막.... 노짱님 다니실 때 이름은 부산상고. 어쩐지 '남' 같지 않은 느낌....
그래서였을까요? 현수막 위 노란 풍선은 서울광장 식구들이 달아주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봉하국밥입니다. 우리를 찾아서 안희정님이 오셨습니다. 1주일에 나흘은 봉하에 계신다고 합니다. 모두들 마음 속으로 다짐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말로 정리해 주시더군요.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기록되어야 합니다. 후손들에게 노무현의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서 노무현과 당대의 동지였던 우리가 그분의 정신과 뜻을 역사로 지켜내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 길을 여러분이 함께 해주십시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몫입니다. 노무현의 자손이 잘되는 것에도 힘을 보태주시고, 노무현 기념사업, 노무현의 역사를 기록으로 지켜내는 것에도 힘을 모아주십시오."
통기레스 대표님 이하 매주 봉하마을 자원봉사를 하시는 부산광장 회원님들과도 반가움와 고마움의 인사를 나눈 후, 모두의 마음 속에 여전히 쌓여있는 서러움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7월 10일 49재 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나누며 다시 서울 가는 차에 올랐지요. 그렇게 봉하의 하루가 끝났습니다.
함께 해주신 서울광장 유티즌님들께 다시 한번 늦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챙겨주고 도와주신 우물지기님과 부산광장 식구들, 좋은 말씀 나눠주신 정토원장님, 안희정님과 비서관님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추신. '성지순례'라는 말에 대해서....
며칠 전, 어떤 분과 식사를 하며 '성지순례'라는 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지난 6.10 범국민대회 때 한홍구 교수님이 했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광주항쟁은 결국 6월항쟁과 민주주의의 승리로 이어졌다. 광주영령의 피가 숨쉬고 있는 그곳, '망월묘역'을 우리가 '민주화의 성지'로 부르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부채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노짱님의 서거에 국민들은 광주보다 더한 '살아남의 자의 슬픔과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다. 부채의식을 넘어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국민 모두가 집단적으로 지니게 되었다. 2009년 봉하가 80년 광주보다 더하다는 것은 지금의 슬픔과 죄책감이 그분과의 일체감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내면화되었다는 거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저마다 '상주'가 되어 있는 거다. 한홍구 교수는 마침내 광주의 시대가 끝났고 이제 부엉이의 시대가 열렸다고 하더라.
봉은사 주지스님이 소신공양이라는 말을 하고, 천주교 사제들은 이명박을 빌라도로 노짱님을 예수로 말하면서 한반도 골고다에 커다란 십자가 하나가 새로 섰다고 한다. 그 골고다가 어디일까? '봉하올레'와 '부엉이바위'. 봉하는 노짱님의 삶에서 죽음까지 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곳을 한국 민주주의의 '성지'로 부르고 그곳을 다녀오는 것이 '성지순례'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지난 20년, 우리 국민들은 80년 5월광주에 빚 갚는 마음으로 살아왔고 그 마음이 끝내 민주주의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처럼, 이제 2009년 5월 이후 우리는 노짱님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그 마음의 힘이 다시 민주주의의 승리와 그분이 만들고자 했던 '사람사는 세상'을 이루어주겠지요.
그 마음으로 다녀오는 길. 그분이 계셨고 그분이 계신 곳, 봉하. 성지순례 말고는 다른 적당한 말을 못 찾겠더군요. 한 발 앞서서 이미 그렇게 쓰고있는 언론도 많았구요. 이번 공지 때 몇 분이 댓글로 주셨던 의견을 보며.... 다녀와서 말씀드려야지 했던 생각입니다.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