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아무 것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역사와 현실이 눈 앞에서 뒤엉켜 버렸고, 살아 남은 저의 자리는 어디인지 갈피를 못잡는 것이지요.
어느새 아득해진 그 '언제'인가부터 제가 살아가는 자리는 늘 '그분'과 함께 하는 곳이었기에, 그동안의 제 흔적도 자리도 그분과 함께 모두 역사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분이 없는 현실 '어디'인가에 이제는 저 혼자 살아가는 자리를 만들어야 되는 것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는 이미 다들 아십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것을 넘어 도무지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것이죠. 몸도 마음도 머리도 여전히 그분의 '부재'를 '사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생각조차 거부되죠. 그럴 때마다, 우리가 이럴 것을 뻔히 아시면서 혼자 역사가 되어 훌쩍 떠나가신 당신이 밉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아무리 되뇌어 본들 그 미안함과 고마움의 마음 한 켠에 속절 없는 야속함도 남아있음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이 말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 야만의 세상이 아무리 당신을 초라하게 만들어 놓는다 하더라도, 그리하여 당신이 더 이상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저' 계시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벅찬 행복이니까요. 행여 누가 볼 새라 나 홀로 값진 보물을 어딘가에 깊이 감춰놓고는, 그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남 몰래 혼자 웃고있는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당신도, 당신의 역사도, 아직은 가슴에 묻을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아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해 보려 안간힘을 쓰다가도, 그럴 때마다... 동터오는 이른 아침, 부엉이바위를 뚜벅뚜벅 오르시는 당신의 모습이 곂쳐져서 그예 생각이라는 것을 포기하고 맙니다.
'그날', 아무리 술을 들이키고 부어넣어도 취하지 않는 망연함에 하루를 새운 후... 어스름 새벽 봉하에 누워 멀리 부엉이바위를 쳐다볼 때마다 끊임 없이 환청처럼 들려오던 당신의 목소리. 7년 전 봄, 국민경선을 승리로 마친 대통령후보 노무현이 덕평에서 우리에게 했던 그 첫 마디, '이제 여러분은 뭐하시죠?'.
그리고... 아무리 헤아리려 애를 써도 풀리지 않은 채 머리 속을 맴도는 스스로의 한 마디, '왜? 왜 그러셨을까?'
49재가 이틀 후인 지금까지도 그 두 마디 질문에 대한 답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숨이 막히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이 시려올 뿐.
지난 금요일, 6재에 다녀왔습니다.
막재가 되기 전, 49일 동안의 재에 한 번이라도 참여해서 절을 올리고 싶었고, 생각으로 답이 완성되지 않으면 다시 그곳에서 찾아 채워보리라... 싶었지요.


지금 그분이 계신 곳, 봉화산 정토원. 그곳을 오르는 가파른 계단 중턱, 가야국 왕의 아들이 수도를 했다는 자은암 절터 마애석불. 결가부좌한 좌불이면서 보기 드물게 누워있는 와불입니다.
그리고... 정토원에서 한 눈에 바라 본 부엉이바위 정상입니다.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앉아 쉬셨던 자리.
돌 속의 부처가 왜 누워있는지는 말만 무성하다지요. 처음부터 그렇게 새겼기에 스스로 누운 것인지 넘어져서 그렇게 된 것인지... 스스로 넘어졌거나 누군가에게 떠밀려 그곳으로 떨어졌거나.
당신이 '탄핵' 쿠데타로 대통령을 정지당했을 때, 당신은 청와대라는 저 아득한 산 정상 암자에 유폐당한 외로운 '왕'이었습니다. 제 눈에는 지금 저 암자터 바위틈에 불편하게 끼어 누워있는 석불이 당신으로 보입니다. 그때나 그후나 지금이나 말입니다.
스스로 저리 했을리가요. '1년 안에 청와대에서 죽어나올 수도 있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스스로 찾아 들어가 누운 자리라면, 지금까지도 굳이 저렇게 결가부좌를 풀지 않고 있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요.
당신의 자리가 늘 벼랑 끝이었다 하더라도... 일으켜 드려야지요. 이제라도 말입니다.


6재를 마치고는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별 아래 하릴 없이 마을 구석구석을 거닐다, '그' 길을 따라 화포천을 찾았습니다. 어린 시절 당신이 통학하던 길이라지요. 부엉이바위에 오르시기 나흘 전, 마지막 외출. 자전거를 탄 당신은 마지막으로 이 길을 다시 달리셨다지요.
올 2월, 귀향 1주년을 맞아 화포천에 띄웠던 작은 쪽배가 물에 잠긴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뿐, 사람도 철새도 없더군요. 오리무논과 화포천을 가르고 있는 철길로 무심히 지나간 기차만 아니었다면 시간도 공간도 모두 멎어있는 화포천이었습니다. 마치 지금은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고향에 돌아온 당신이 제일 먼저 시작하신 일이 화포천 살리기였지요. 이 넓은 습지를 아름다운 환경생태 학습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당신의 꿈이었구요.
지켜보세요...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잘 지켜보세요.


생태연못, '연지'. 사람세상 정자에 앉았습니다. 노짱님이 돌아오시기 전에는 그저 연밭이었다는 곳, 농군정호님 이하 정말 많은 분들의 손길이 분주하다더니 올 때마다 모습이 달라집니다.
연못에는 연이 가득하고, 노란 막사가 지키고 있는 오리무논이 그림처럼 마주 보입니다. 정토원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 봤을 때, 논마다 보이는 저 샛노란 오리막사가 왜 그리도 눈을 시리게 하던지요.
계셔야 할 단 한 분만 계시지 않은 곳, 주인을 잃고 시간이 멎어있기는 이곳도 마찬가지인데... 한 걸음에 달려가 본 생태논만은 그렇지 않더군요.
'대통령님께 묵념'으로 시작하는 슬픈 모내기를 사진으로 본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말 그대로 쑥쑥 자라난 벼가 새파랗게 논을 채우고 있습니다. 친환경 논이라 그런가요, 보기 힘들어졌다는 백로와 황로가 이곳에는 참 많이 보입니다. 하얀 몸짓으로 그들이 날고 앉는 논 곳곳마다 아직은 어린 오리농군들이 분주하게 종종거리고 있습니다.
옆에서 그예 한 마디 합니다. '얘들아, 너희들 아빠가 어디 계신지 지금 알고는 있는거니'.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재를 모시는 정토원 수광전 입구 석탑에 적혀있더군요.
불멸의 생명, 끝없는 광명, 시간과 공간의 무한한 도리를 깨치셨다는 아미타 부처님. 이틀 후 49재를 마치면 노짱님은 아미타 부처님이 계신 정토로 왕생하신다지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가장 아팠던 당신의 글입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 책 읽고 글 쓰고 끝없이 토론하는 일. 노짱님, 이제 그곳에서 편안하게 책도 읽고 글도 쓰십시오. 그곳에 계신다는 부처님, 예수님과 함께 좋아하는 토론도 마음껏 하십시오.
다만, 만약 저에게 아미타 부처님이 있고 예수님이 있다면... 그분은 노짱님이라는 것만 기억해 주십시오.
'그날' 봉하에서, '이제 우리는 뭐하죠?' 또 한 번 그분의 입을 빌어 중얼거리자 누가 그러더군요. '이제 다시 거리로 나올 일은 없겠지'. 그랬습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그 길고 고단했던 여정을 드디어 마쳤다. 희망과 고난의 유일무이한 드라마가 지금 막 끝났다. 다 이루었지만 끝은 '비극'이었다. 다 끝났다. 에필로그가 있다면 '복수' 뿐.
한 가지가 남더군요. 지금까지도 완성하지 못한 답, '왜 그러셨을까?'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당신에게 감히 어떤 글도 쓸 수 없었습니다. 어떤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당신에게 바친들 이제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다 생각하니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를 모르기에 당신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나 그럴수록 '왜 그러셨을까'는 깊어만 갔습니다. 결국 '이제 우리는 뭐하죠'로 돌아오는.
500만을 넘어섰다는 '상주'들의 정체를 모르겠는 것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저들은 누구야? 도대체 어디에 있던 사람들이지?' 솔직히 고마움보다는 야속함이었습니다.
또 한 분의 대통령이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저승에서 '깨어있는 시민'과 함께, 나는 이승에서 '행동하는 양심'과 함께 하십시다. 우리들보고는... 하다 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랍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당신의 자리에 남기신 당신의 마지막 말입니다.
6재 봉하에서 만났던 어떤 분이 말씀하시길 깨어있는 시민은 많았지만 죽었다 깨나도 조직은 못하더랍니다. 돌이켜보니 정말 시민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무장한 시민군을 보지는 못했다가 맞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리 된 것이겠죠.
묘역을 꾸미려면 이제 비가 그만 와야 하는데... 아직 덜 꾸며져서 처음에는 많이 쓸쓸해 보일텐데... 한참을 걱정하던 그분이 또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뭐하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구'. 어떻게 한들... 산 자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예'일 뿐.
많은 분들이 또 말씀하십니다. 역사를 쓰라고 합니다. '왜 그러셨을까'에 대한 답을 찾는 길일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최소한... 이 원망, 미안함, 고마움, 서러움, 답답함, 야속함, 복수심을 다스리는 것은 될까요.
노무현의 역사를 쓰고 노무현 후손들의 역사를 쓰는 것, 지금 불편하게 누워계시는 당신을 일으켜 드리는 일이 맞는지요. 꼭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는 못했던 시민군의 무기를 진짜 만들어 보는 것, 복수를 향한 가장 빠른 길이 맞는지요.
'강물은 굽이쳐 흐르지만 결국은 바다로 갑니다'. 노짱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말이 당신과 우리의 드라마를 끝나도 끝나지 못하게 하고 있음을 아십니까. 그렇지만, 당신 없이 그 길을 가겠다 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공허하고 또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는 아십니까.
노짱님, 이틀 후면 당신을 보내드리러 또 그곳에 갑니다. 잘 보내드릴 수 있다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당신에게 다녀오는 길 그 마지막 여정에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요.
듣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노짱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