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광장 중앙토론방에도 사사세 자유게시판에도 시끌시끌하더이다.
초라하다느니, 무례를 범했다느니, 동서고금에도 없는 일이라느니…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하고 애통해 하는 심정에서 벌어지는 난상토론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시장바닥 같은 번잡스러움은 지울 길 없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최선일 리도 없고 정답일 리도 없다. 다시 말해 그 많은 말들 또한 정답이라 단언할 수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왜?
생각해 보자. 예의범절이라 하는 것이, 우리가 지키고 후세에 전해주어야 할 많은 가치있는 일들이 태초에 '이건 이렇게 하라, 저건 저렇게 하라' 누가 정해주고 결론 맺었나. 사람사는 세상의 가치는 수많은 경험과 수많은 사람들의 동의에 의해 묵시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가치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전승 발전되는 것이리라고 본다.
그럼, 장례문화는 어떤가?
고인돌이라 불리는 석실고분도 있었고, 목곽분도 있었고, 옹기분도 있었고, 회곽분도 있었다. 처음부터 사람이 나고 죽으면 이렇게 석실에 묻어라 하는 정해져 있는 신의 길이라도 있었나. 생각컨대, 그 시대를 관통하는 장인의 눈에 가장 좋은 재료와 기술이 오롯이 투영되는 것이 분묘의 형태와 재질이라고 본다.
그 시대에 가장 좋은 재질이 돌이라고 생각하면 돌을 사용하고, 돌이 좋음은 알지만 경제적인 면이라든가 기술적인 면이라든가 여의치 않으면 또 다른 차선책을 사용하는 것인데, 여기에 망자에 대한 최선의 예의가 보태어져야 함은 두말 할 나위 없는 일이고…
시골집 마당에 가면 지금도 장독대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장항아리가 있다.
볕 좋은 날, 뚜껑 열어두고 동네 아낙 빼어닮은 몸뚱아리 깨끗하게 행주질해 놓으면 햇살이 반짝인다. 햇살 반짝임 속에 장이 익는다. 구수한 된장찌개로, 얼큰한 김치찌개로 그렇게 항아리 속에서 꿈이 익어간다.
보기 좋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옹기가 좋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나 죽어 저세상 갈 때 장 담그고 김치 담그는 저 항아리 속에 발 하나 제대로 뻗지 못하고 묻히는 것도 아름답고 보기 좋다 할라는지… 하지만 예전에는 옹기분도 지체 높은 부족장의 무덤이었다. 세상을 호령하던 왕의 무덤이었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끝도 없고 정답도 없는 말의 수렁에서 이제 벗어날 때이다. 형식이 어떻든 모양새가 어떻든 그게 그리 큰 문제인가. 아무 때나 보고 싶고 그리울 때 한걸음에 달려가 만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밤이어도 좋고, 낮이어도 좋고, 비가 와도 좋고… 눈이라도 내리면 더욱 좋겠지.
내 님의 무덤은 그래서 더 좋다.
세상과 담쌓지 않아 좋고, 시간의 허리띠 질끈 묶어놓지 않아 좋고, 무엇보다 올려보지 않아 좋다.
내 어머니 무덤가에 소주 한 잔 들고 가 '엄마, 막내아들 왔어요' 하고 봉분에 비스듬이 기대어 소주잔 기울이면 꼭 엄마 가슴에 얼굴 묻고 어리광 부리는 것 같아 좋다. 내 님의 그것 또한 다르지 않아 좋다.
아마도 님 또한 그리 생각하시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은가 보다.
철판은 동서고금에도 없는 재질이라느니, 너무 작다느니, 초라하다느니…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제일 크고 화려한 무덤이 누구의 무덤일까? 그렇다. 제일 크고 화려하고 근엄하고 범접할 수 없게 세상과 높은 담으로 차단된 그저 말 그대로 죽은 자를 위한 무덤은 박정희의 무덤이다.
그래, 크고 화려해 보기 좋던가? 그곳에 한 번이라도 가보고자 생각한 적이 있었나. 새벽길 한걸음에 달려가 꽃 한 송이 바쳐본 적이 있는가. 난 없다. 그럴 생각도 없다. 앞으로도 없다. 우리 애들에게도 없다. 영원히~~~ 참 보기 좋다. 죽은 자의 버림받은 영혼만이 어슬렁거리는 그 곳이 참 좋다?
난 그래서 보기에 따라 초라하고 작은 내 님의 무덤이지만 지금의 그 모습이 더없이 좋다.
두서 없는 이 글을 쓰다 보니 또 다시 가고 싶다. 당장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