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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6개월 만에 찾은 봉하마을이었습니다.
내 생에 첫 신년 일출맞이를 저 머나먼 남쪽동네에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만큼 올 해부터는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생긴 것이겠지요.
그 소망은 여러분들이 간직한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거북이 등껍질 마냥 거대한 배낭을 짊어매고 봉하마을에서 연말연시를 보내고 왔습니다.
봉하를 몇번 방문하신 적 있으신 분들은 모두 인정하듯이, 그 동네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짬모텔에 방을 이틀전에 예약- 그 모텔 툭하면 방이 꽉차서 못 구함 ㅎㅎ -을 해놓는 치밀함을 구사했지만, 실상 제일 중요한 기차표 예매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대전에서 갈아타는 등 돈과 시간을 거의 따불로 지불해 버렸습니다. ㅜㅜ
하지만 진영으로 가는 기차에서 반가운 동지를 만났기에 전혀 아깝지 않다는 ^^;
바로 제가 탄 좌석 옆자리에 노짱님의 '성공과 좌절'을 읽는 학생이 있길레 '혹시 봉하마을 가세요?' 하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놀란듯이 그렇다고 하면서 제대로 의기투합 됐습니다.
올해 수능을 마친 예비 대딩으로 신문기자의 꿈을 꾸고 있는 아주 생각 깊은 친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언론인이 되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우선 불어불문을 전공한 뒤 프랑스로 유학가서 기자생활을 시작하고 싶다고 하네요.. 헐... 정말 될 성 부른 나무입니다.
그렇게 만 하루동안 그 친구랑 거의 동행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나름 시민광장과 국민참여당에 대해 홍보도 기울였습니다. 서로가 아주 물과 고기 만난듯 신이 났었죠. 아주 기대가 큰 친구입니다.
그 친구도 바로 그날 시민광장에 가입해서 많은 글을 읽었는지 다음날 진지하게 이것저것 물어보더군요... (당에도 곧 가입할거 같습니다.) 광장 닉네임도 '사람과삶' 이라고 한 게 정말 나이답지 않은 포스가 느껴집니다.
그렇게 진영읍에 도착해서 생전 노짱님께서 즐겨 찾으시던 백제 삼계탕에서 식사를 한 후 그 친구랑 봉하마을까지 걸어(거진 한시간 걸립니다) 들어갔습니다.
공단에 들어갈때즘에 저 멀리 아주 큼직한 보름달이 2009년 마지막 초저녁에 우리를 반겨주네요.

드디어 해 다져서 봉하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조금더 서둘러 도착했으면 부엉이 바위에서 2009년 마지막 일몰도 함께 했을텐데..

반년전에 한창 공사중이던 노짱님 생가는 완전 복원된 모습이고요.

한창 묘역 새 단장 공사를 하고 있어서 지금은 노짱님 묘역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신 참배객을 위해서 따로 큰 사이즈의 묘역사진과 영정사진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나마 정성을 다해서 노짱님께 참배드리고 그 친구와 함께 영정사진 앞에 담배를 피워 꽂아 드렸죠.
일몰 장면은 못 찍었지만 2009 마지막 붉은노을은 볼 수 있었습니다.
부엉이 바위에 올라 칼바람 맞으며 한컷 남겼습니다.

부엉이 바위를 내려오매 노짱님 사저 입구 근처에서 찍었습니다.
사자바위 바로 옆에 자리잡고 휘영청 밝은 자태를 뽐내는 보름달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 친구랑 진영읍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면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운 좋게도 봉하재단 사무국장으로 계시는 김경수 비서관님을 만나게 되어 그분의 호의로 공짜로 택시를 타고 진영읍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와 우리 동상은 새벽 5시에 모텔을 나와 들뜬 마음으로 봉하를 향했습니다.
다시 우리의 걷기 노가다는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진영읍에서 봉하 입구까지 40분도 채 안걸립니다. ㅎㅎ
역시 봉하마을은 새벽부터 해맞이를 향한 시민들이 발길이 줄을 잇습니다. 저도 행여 새해 첫 햇살을 놓칠까 부랴부랴 산행을 했습니다.
사자바위에 오르니 동녘하늘은 아직 붉으락 푸르락 한 새벽의 자태 그 자체였고,
반대편 하늘엔 아쉬운 작별을 고하듯 한껏 붉어진 보름달의 마지막 쓸쓸함이 비춰졌습니다.
 
자... 드디어 일출이 시작되었습니다.
약 7시 43분경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함성과 감탄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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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각자 어떤 꿈과 희망을 간직하고 새해을 맞았을까요?
그런데 희한한 것이 막상 해가 떴을 때 저는 아무 생각도 안들더군요.

저 커플을 배경을 찍으니 너무나 아름답더군요.
좋은 사랑 이어가시길 빕니다. (사뭇 부럽네요 ㅎㅎ)
새해 첫 햇살을 머금은 봉하마을입니다.
아래 노짱님 묘역 공사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군요.
저 세모난 묘역 안에 여러분들이 신청한 박석들이 촘촘히 박힐 예정입니다.

내려오매 찍은 부엉이 바위입니다.
뛰어내리시기 직전 그분이 바위 끝단에 서 계셨을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나 아찔합니다.
더이상은 피의 민주주의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날 12시에 무슨 공식 참배가 있다길레 졸린 눈을 애써 부릅떠가며 봉하에 남았습니다.
막상 12시쯤 되니 왠 기자들이 모이고, 곧 이어 문재인 전실장을 비롯해서 이해찬총리, 한명숙총리, 김두관장관등 전 참여정부 주요인사들이 모여 참배를 짤막하게 하고 그 모습을 기자들이 카메라 셔터 누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아.. 그냥 요식 행사였구나..
그리곤 우루루 봉하 사저들어가는 것이 "아하.. 권양숙여사님 인사드리러 와서 얼굴도장 찍으러 온거 뿐이구먼..."하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더군요.
민주당은 아예 버스를 대절해서 왔다 갔습니다.
봉하마을이요? 예전보다 더 관광지화 된 것이, 그곳에 자리잡고 오뎅장사라도 하면 돈 좀 벌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참 씁쓸합니다. 노짱님께선 생전에 당신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봉하에 올 것이 아니라 자기지역에서 시민활동, 농촌활동에 매진하라고 하셨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농촌개혁 활동의 롤모델이 되고자 했던 봉하마을이 그분 서거후엔 상술이 난무하는 관광지가 되가는 모습에 더욱 서글퍼졌습니다.
그런 봉하마을을 뒤로하고...
 
진영에 살고 계시는 지인을 만나 그분과 함께 마지막으로 주남 저수지를 들렀습니다.
이쪽 창원, 진영쪽의 습지와 저수지는 너무나 깨끗해서 생태 보존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합니다. 작년에는 환경올림픽이라 불리는 람사르 총회가 창원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 주남 저수지 또한 크기도 하거니와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합니다.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봉하에서 담은 햇살을 여러분들께 뒤늦게 보내드립니다.
바로 일년전엔 노짱님께서 바위에 올라 새해 첫 햇살을 받으시면서 한국의 미래, 민주주의의 미래, 진보의 미래를 구상하셨을 텐데...
그분은 이제 소리없는 청명한 햇살로 우리를 비추십니다.
그 고민을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가야하겠습니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양성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흙먼지 재를 쓰고 머리풀고 땅을 치며 나 이미 큰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
저 깊은 곳의 영혼의 외침 저 험한 곳의 민중의 뼈아픈 고통 내 작은 이 한 몸 역사에 바쳐 싸우리라 사랑하리 내 작은 이 한 몸 역사에 바쳐 싸우리라 사랑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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