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에 널린 것이 구름이요, 바람이요, 비였던 초가을 길을 나섰다.
이왕이면 해가 쨍하고 뜨기를 밤새 기원하면서 아침을 맞았다만
나의 기원이 무색하게 비가 내린다.
이놈의 비는 이제 더 이상 오시는 게 아니다. 그냥 내리는 거다.
오거나 말거나 하는 비아냥 쯤이야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천덕꾸러기가
된지 오래다. 차창을 스치는 빗방울과 산허리에 피어나는 구름, 세상이 온통
물 천지인 날 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마치 어머님 기다리시는 고향을
한걸음에 내달리는 그런 기분이랄까. 뭐가 되었든 마음이 설렌다.
두 시간여를 달리는 버스의 움직임이 달팽이의 질주 같다.
달팽이 뜀박질 하듯이 달려온 그 먼 길이 끝나는 시간. 서대산 산자락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 바쁘다.
“다정이는 못 본새 씩스팩의 몸짱으로 변했네!”
“그러는 똘님은 더 머리가 단단해 진거 같은데....”
하하하, 호호호, 깔깔깔, 낄낄낄. 방정맞으면 어떻고, 접시 좀 깨지면 어떠랴.
눈길 피해가며 입술에 침도 살짝 바르고서, 양심에 털도 몇 가닥 심어가면서.
오고 가는 말이 무엇이면 또 어떠랴. 만나 이렇게 반가우면 그만이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에 두 손 맞잡은 이도 있고, 낯설음에 쭈뼛쭈뼛
얼굴 붉히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낯설어 말자. 어디 사람의 인연이란 게 처음부터
맺어졌으랴. 이렇게 낯도 설고 물도 설고 그러면서 만나는 게 사람의 인연이지.
그렇게 강당에 모여앉아 수다도 즐겁고 게임도 즐거웠지.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사랑스러웠고, 어른들의 굵직한 함성도 가슴 설레었지. 웃고 떠들고 함성도 지르고
손바닥이 벌겋도록 박수도 치면서 오백여 명이 뿜어내는 열기는 한여름의
폭염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런 뜨거움이 ‘정’이란 거겠지.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단단한 고리가 되어 마침내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성.
그 동질성이 만들어 내는 뜨거움에 취해 심장이 뛴다. 첫사랑 순이의 손목을
잡던 날 한숨도 못자고 콩닥거렸던 심장의 떨림. 서대산자락에서 나의 심장은
그렇게 뛰었다. 그 숨 막히는 순간에 풍선이 여기저기 흩뿌려지고 사회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풍선기둥 쌓기란다. 누구는 눈이 벌겋게 충혈 되도록
풍선을 불고 ,누구는 열심히 비닐봉지에 담고. 몇 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강당의
천장에 닫도록 풍선기둥이 우뚝 선다. ‘함께하는 힘이 이런 거다’ 하고 뽐내듯이.
그 풍선기둥을 들고 사람들이 달린다. 헐레벌떡 그러나 모두가 바람 같다.
쏜살같이 내달려 반환점을 돌아 이내 출발점으로 달려든다. 초원을 내달리는
치타의 발걸음이 아마도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은
이미 의미가 없다. 함께 가쁜 숨 몰아쉬면 그것이 기쁨이다.
강남의 푸른빛돌님이 가쁜 숨 몰아쉬면서 한마디 내뱉는다.
“저거요, 생각보다 무거워요!”
그런가? 고무풍선 기둥이 정말 무거운가. 그래봤자 손바닥만 한 풍선 백 여 개가
단데. 공기로 채워진 풍선이 정말 생각보다 무거울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 아마도 풍선은 빛돌님의 말처럼 생각보다 무거울 거다. 매 순간 호흡하지
않으면 죽고 마는 것이 공기지만, 그 속에서 유영하는 우리지만 공기의 무게감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고 산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해서 그 존재감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흩어져 형체도 없고 그 불어오고 불어감에 바람이라 이름도 지어주지만
그것이 다다. 하지만 의미 없는 존재감의 공기도 뜻을 세우고 숨결을 불어넣으면
기둥으로 태어나 천장을 호령한다. 들고 달리기에 버거운 무게로 태어나 숨을
헐떡이게도 한다. 공기란 그런 것이다. 눈길을 주지 않고 그렇게 버려두면 주위가 온통
공기로 가득하지만 아무도 그를 볼 수도 없고 만지지도 못한다.
우리끼리야 서로의 존재에 행복해 하고 즐거워한다지만 남들이 바라보는 우리들
‘시민광장’이 그렇지 않을까. 이렇게 각자 흩어져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면 그저 허공을
떠도는 공기에 불과하지만, 누군가 의미를 부여하고 뜻을 세우면 우리도 풍선기둥처럼
우뚝 서서 강당의 천장을 호령하듯 세상에 사자후를 뿜어내는 거대한 기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스치듯이 내뱉은 말이지만 난 그 말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한가.
서로의 뜨거운 호흡을 불어넣어 마침내 풍선기둥을 만든다면, 서로의 가슴속에
단단한 돌멩이 하나 깊이 간직한다면, 세상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천년을 굳건한 명산의 바위만이 어찌 바위랴.
우리들 가슴속에 옹골차게 품은 돌덩이 하나가 마침내 하나 된 호흡으로 깨어나는 날
울산바위보다도 더 거대한 바위로 태어날 것이라 믿는다. 우리이기에 믿는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고기를 굽고 반찬을 내오고 막걸리다 소주다 맥주다 할 것 없이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그 속에서 아련히 취해가는 사람들의 마음도 부족함 없이 서로에게
취하며 행복했던 저녁식사가 끝나고 이어지는 장기자랑에 배꼽을 떨어트리기도 여러 번.
아마도 지금 내 배에 붙어있는 배꼽은 필경이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나의 취기도 정점을 향할 때 쯤 사람들이 시끄럽다.
웅성웅성하는 소리는 이내 와!하는 소리로 변해 시선을 끈다. 첨맘님이다.
여기 서대산자락에 이 많은 사람들을 이끈 사람. 정치는 썩었다고 할 때,
그 부패함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그이기에 우리는 그를 희망이라 부른다.
이어진 첨맘님의 연설이야 여기서 중언부언 할 필요가 있을까.
언제나 힘이 있고, 희망이 있고, 간단명료한 통쾌함이 있는 말들.
그의 연설에 많은 이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멋진 단어들의 열거에 그치지 않는
그만의 진정성과 철학이 그의 말에는 녹아있기 때문일 게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을 체육대회는 그렇게 깊어가고 새벽은 밝아오고.
그 많은 시간 속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나의 머리가 모자라고
지면도 모자라고. 좌우간에 모자람이 너무 많아 모두 생략을 한다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에도 머릿속에 윙윙거리는 말 한마디는
“저거요, 생각보다 무거워요!”하는 빛돌양의 말이다.
뜻을 세우고 교감하면 우리는 공기의 가벼움을 무겁고도 단단한 돌덩이로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