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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춘] 2009년 6월 27일 리영희 선생과 함께한 풀밭 위 잔치를 그리며...
로키 | 2010-12-06 18:36:27 | 조회 4521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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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남긴 숙제 끝내고 하늘나라서 학예회 할게요

2009년 6월 27일 리영희 선생과 함께한 풀밭 위 잔치를 그리며...

10.12.06 12:27 ㅣ최종 업데이트 10.12.06 14:39  류시춘 (spring610)

 

2009년 6월 27일 일요일 오후 5시.

 

초여름 하늘은 청잣빛으로 푸르고 신록이 더할 나위 없이 싱그러운 초여름 하오였다. 리영희 선생님은 병환이 깊어져 아드님이 살고 있는 연희동으로 거처를 옮겨 통원치료를 받고 계셨다.

 

잔디밭이 아담했다. 담장 너머 위쪽에 연대 후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간혹 지나가는 이들의 발소리와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섞여 들리는 게 사람사는 마을의 냄새를 풍겨 싫지 않았다.

 

잔디밭 위에 접이식 테이블을 펴고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여성 예닐곱 명이 '학예회'준비를 서둘렀다. 김선주(전 한겨레논설주간), 조선희(전 씨네 21편집장), 류시춘(전 국가인권위원), 이유명호(한의사), 고은광순(한의사) 등이었다.

 

  

▲ 지난 2009년 류시춘 전 국가인권위원이 리영희 선생님을 만나고 있다.

ⓒ 류시춘

 리영희

이들은 리영희 선생님께 직접 강의를 들은 적은 없지만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등을 통해 세상 속에 '다시 태어난' 리영희의 제자들이었다. 이 새로운 '하늘과 땅'을 접한 이후 이들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 평등이라는 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들의 청춘은 결코 리영희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2006년 선생님의 대담집 <대화> 출판기념회가 열렸을 때, 이들 여성 열댓 명은 모두 가슴에 꽃을 달고 축가를 합창했다. 이들을 가리켜 그때, 사회자는 리영희의 '오빠부대'라고 소개했다. 그때는 한비야, 서명숙, 정혜신, 오한숙희, 유지나, 김진애, 정경아, 진선미 등이 함께 합창했다. 긴급구호팀장, 오마이뉴스 전 편집국장, 정신과의사, 여성학자, 교수, 국회의원, 변호사 등 각각의 직업은 다양했지만 리영희에 감전된 '오빠부대'임은 틀림없었다.

 

이후, 그 오빠부대는 각자의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선생님의 군포댁을 찾아뵙기도 하고 때로는 눈부시게 아리따운 봄날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봄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선생님이 와병하시기 직전 어느 5월에는 강화도로 긴 나들이도 갔다. 그곳에서 이들은 선생님 내외분의 발을 씻겨드렸다. 그리고 그날 선생님은 사모님 윤영자님의 발을 만져드리면서 말했다.

 

처음으로 아내의 발을 온전히 만져주노라고. 이런 기회를 줘서 정말 눈물나게 고맙다고. 놀랍게도 그날 선생님은 손수 운전으로 강화까지 오셨다! 우리들 '오빠부대'와 리영희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사적이고 정감적이고 즉흥적이었다. 우리들을 만날 때마다 선생님은 늘 즐거워하셨다. 

 

'오빠부대'의 재롱잔치에 리영희 선생이 웃다

 

2009년 6월 27일 당시에도 선생님은 우리들을 기다리다가 몇 번이고 사모님께 (우리들이) 몇 시에 오느냐고 되물으셨다고 한다. 약속시간을 알고 계셨음에도 우리가 오기를 무척이나 기다리신 모양이었다.

 

드디어 잔디밭에 학예회 객석을 만들고 선생님은 휠체어에 앉으셨다. 사모님이 바로 옆에 나란히 앉아 우리들이 선보일 '재롱잔치'를 기다렸다. 조선희씨가 자기 몸무게만큼 나가보이는 아코디언을 가슴에 두르고 나섰다.

 

우리들이 해마다 5월 광주항쟁기념일이 되면 부르는 '5월의 노래'가 흘렀다. 아코디언 연주로 듣는 곡은 또 감회가 달랐다. 달콤쌉싸름한 우수와 묘한 에너지가 함께 건너왔다. 누군가 이 곡이 원래 프랑스 곡이었고 번안했음을 알려준다.

 

이어서 '스텐카라친'이 연주되자 선생님은 나직이 그 가사를 되뇌며 따라 부르셨다. 우리들이 청춘이었을 때 수없이 부르던 그 노래를 병마에 지치신 선생님이 나지막이 읊조리듯 불렀다. 무척 평온한 얼굴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선생님 내외분은 앙코르 요청을 했다. 기다렸다는듯이 조선희씨가  '백만송이 장미'를 연주했다. 아마도 같은 러시아 곡이어서 쉬이 연상된 듯 보였다. 우리는 심수봉버전으로 그 러시아곡을 합창했다. 그리고 몇 곡의 노래를 더 불렀다.

 

다음으로 고은광순 선수가 나섰다. 배운 지 얼마 안되는 해금을 들고 '섬집아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연주한다. 완전 초보이지만 오로지 선생님 앞에서 연주하겠다는 그 일념으로 용맹정진한 결과, 그런대로 괜찮았다. 두 곡으로 미진했던지 그는 선생님께 '베사메무초'를 헌정한다. 음성보다 두 팔과 가슴을 열정적으로 열어보이는 몸의 언어가 더 섹시했다.

 

  

▲ 리영희 선생이 2009년 집앞 잔디밭에서 활짝 웃고 있다.

ⓒ 류시춘

 리영희

선생님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류시춘은 시 한 편을 올렸다. 변산반도에 사는 한 어부시인의 '사랑'이라는 시. 언제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게 풀여치 한 마리가 어깨에 내려앉은 걸 알고 스스로 풀잎이 되고자 하는 노래다.

 

그러는 사이에 해가 기울고 잔디밭에는 담 위의 키 큰 플라타너스가 긴 그림자를 눕혀왔다. 황혼녘에 보는 리영희 선생님의 얼굴은 오랜 병고의 그늘없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는 준비해 온 화관을 선생님 내외분께 씌워드렸다. 선생님은 월계관을 쓴 손기정 선수보다 더 감격해했다. 우리는 모두 2열로 서서 선생님께 드리는 노래를 함께 목청껏 불렀다.

 

"꽃중의 꽃, 리영희꽃.

 삼천만의 가슴에

 피었네, 피었네,

 영원히 피었네.

 

 백두산 상상봉에

 한라산 언덕 위에

 민족의 얼이 되어

 아름답게 피었네 "

 

"내 인생, 그다지 잘못 산 것은 아니구나"

 

우리는 반복해 부르면서 율동도 함께했다. 어깨로 물결치듯, 두 손을 모아 꽃봉오리를 벌리어내듯 각자의 몸짓으로 열연했다. 이때 선생님의 두 눈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우리가 지상에서 들은 마지막 말씀을 하셨다.

 

"병석에 누워 오랫동안 여러 번 묻고 또 물었다오. 내가 정말 바르게 살아왔나. 나의 인생은 과연 무엇이었나. 게으르거나 잘못한 일은 없었나. 그런데 좀체 해답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오늘 여러분을 보고 비로소 생각한다오. 그다지 잘못 산 것은 아니구나하고 말이오."

 

석양의 붉은빛에 선생님의 표정은 소년처럼 해맑았다. 류시춘이 선생님께 다가갔다. 복수가 차올라 만삭의 여인처럼 부풀어 있는 선생님의 배에 손을 얹고 말했다.

 

"선생님, 이제 곧 옥동자를 낳으실 거예요."

 

그랬다. 쾌차하셔서 이 혼돈의 시대를 밝혀줄 글과 말을, 그 '옥동자'를 우리는 기다렸다. 사나운 삼각파도가 덮쳐오는 캄캄한 바다 위를 비춰주는 그 칼날같은 등대 빛을 꿈꾸었다.

 

리영희 선생님이 영면하셨다. 한 시대가 저물고 말았다. 야만의 시대에 '이성'을 추구한 그 불굴의 정신도 정녕 저무는가? 허위의식이 진실의 권좌를 군림했던 그 기나긴 어둠의 시대를 오로지 '진실추구'의 외길을 걸었던 헌걸찬 정신이 무너지는가?

 

우리들 '리영희 오빠부대'는 겨울이 오기 전에 한 번 더 '재롱잔치'를 못해 후회한다. 그까짓 '개똥 같은 나날'이 무에라고, 그까짓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남루한 일상이 무에 대수라고 한번 모이기 그다지 어려웠을까?

 

선생님의 마지막 눈물과 말씀이 상기 가슴에 선연한데 이렇게 가시다니···.

 

이제 역사의 강 너머로 가신 리영희 선생님. 그가 태어난 곳은 시인 김소월이 '물로 사흘, 배사흘 먼 삼천리, 산을 넘는 육천 리'로 노래한 평북 삭주땅이다. 식민지의 궁벽한 산골소년은 늘 배가 고팠던 '공부벌레'였다. 광신적 반공주의가 이성을 잠재운 시대에 그의 붓은 이성이 눈뜨는 새벽을 앞당기는데 가장 뜨겁고 강렬한 무기로 쓰였다.

 

2003년 3월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던 날 아침에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한 장의 팩스를 받았다. 나중에 보니 지인들 여러분이 함께 받은 한시로 된 자작시 한 편이었다. 마비가 시작된 손으로 쓴 글씨는 삐뚤삐뚤했지만 용트림같은 힘이 배어 있었다.

 

"否氏狂亂不知其終(부시의 광란이 끝을 알 수 없으니)

 人類自存直面危亂(인류자존이 위란에 직면했도다)

 錦繡疆土長變火海(금수강토가 장차 불바다로 변할지니)

 韓民當呼反戰平和(한민족은 마땅히 반전평화외쳐야)"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행여 무너질세라 공들여 쌓은 평화는 일거에 무너졌다. 보온병과 포탄을 구분못하는 집권당의 나라는 자칫 전쟁으로 달려갈지도 모른다. 선생의 혜안이 새삼 사무치게 그립다.

 

'진실의 추구'와 '이성적 인간과 사회'라는 화두를 평생 부여안으셨던 리영희 선생님. 그가 추구한 과제는 여전히 살아있다. 살아있는 우리들 모두의 과제다. 선생이 남겨 놓으신 이 확실한 숙제에 조금이라도 복무한 후에, 그 때 하늘나라에 가서 못다해 드린 학예회 다시 하고 싶다. 그때까지 부디 평안히 복락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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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다시  

선생님은 이날, 답가를 부르셨답니다.
여러분들이 모를 클래식곡을 선별하셨다고,
그 클래식곡은 '갑돌이와 갑순이'였답니다.

선생님.
어리석은 제가, 가르침을 다 흡수할 수 있는 스펀지였으면 좋겠다고,
제 능력을 한탄하고 슬퍼하게 하신 선생님.

편히가세요.
우리 엄마, 우리 아빠도 만나셔서
이 세상엔 아직 희망이 있다고,
그래서 절망은 가당치 않다고,
강은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누떼는 악어떼를 두려워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 한다고,
하여, 두려움은 생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곳에서 편히,
고개 끄덕여주세요.
부끄럽지 않게, 항상 되새기며,
쉬지 않고 걷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당신.
바람을 거슬러 난 큰 새 한마리
만나셨나요.

영면하세요. 느리더라도,
쉬지 않겠습니다.
10-12-06

솔향!  

이 아침 다시 안타까운 상념에 잠기게 하네요.
유시춘 선생님의 절절한 심정이 전달됩니다.
선생님의 다짐과 같이 그 가르침 받은 저도
하늘나라의 학예회에서 발표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모든 것 내려놓으시기 평안하시길 빕니다.
10-12-07

월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옵니다.
--------------------------------------------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와 ‘책임’이었다. …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
이런 신조로서의 삶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이 바로 그것이 형벌이었다.
이성이나 지성은커녕 상식조차 범죄로 규정됐던 대한민국에서랴.”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2005) : 머릿말(읽는이를 위하여 중에서)
10-12-07

다윗돌  

늘
치열하고 아름답게 사신분들의 삶에는 아픔이 베어 있다.
그 아픔에 의지하여 시대의 희망을 본 사람들이라야........
이렇게 순수할 수도 있고 재롱을 넘어선 영원한 존경의 의미를 알리라......
"내 인생 그다지 잘못 산것은 아니구나"
화관을 쓰시고 천진난만 그 자체로 웃는 님의 모습에
시대를 역행하는 모든 주권세력의 초조함과 난폭함 야비함 음흉함을 잠재우는
영원한 힘을 보고 희망을 보았다......영면 하소서.....

늘 어려운 시기에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10-12-08

smurf  

아직도 여명이 멀었는데..이 험한 세상에 우리만 남겨두고
시대의 등불이신 어르신들이 어찌 이리도 걸음을 재촉하시고 떠나시는지요
김대중, 노무현, 김수한, 리영희...
이 전쟁의 광기가 넘실대는, 풍전등화의 조국을..
아 슬프고 슬프다!

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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