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흔히 하는 말로 "꺽어진 육십" 내 나이다. 세상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적학생" 이것은 사실 그 자체다. 나는 대학에 두 번 입학해서 두 번 다 제적당했다. 성적증명서를 떼보면 2학년까지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의 어머니와 고향 친구들, 함께 일하는 동지들과 친지들은 나를 "민주투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형사와 검사, TV 어나운서와 정부당국의 "나으리들"은 나를 일컬어 "좌경용공분자"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름들은 사람들이 자기 주관에 따라 붙여준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일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일자리 없이 여기저기 배회하는" 실업자라고 나를 비난한다. 그렇다. 나는 직장이 없다. 하지만 직업은 있다. 나는 힘으로 벌어먹고 산다. 번역을 하거나 수필을 쓰고, 어떤 때는 드라마 대본이나 소설을 쓰기도 한다. 나의 직업을 구태여 말하자면 "자유기고가"라 할 수 있다. 별 볼 일 없기는 하나 내 이름으로 출판된 책도 하나 있다. 나는 실업자가 아니다.
나는 감옥에 두 번 갔다온 전과자이지만 예비역 육군 병장이기도 하다. 폭력전과가 있지만 그렇다고 폭력배는 아니다. 한번도 남을 때려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계엄령 위반혐의로 군사재판을 받은 적도 있지만 그때는 민간인 신분이었다. 군대생활 32개월 동안에도 영찰 한번 간 일이 없는 모범 사병이었다.
나는 별로 잘나거나 훌륭한 인물이 아니다. 보증금 1백만 원에 월세 5만 원짜리 자취방이 내 보금자리이고 저금통장이나 처자식은 아직 없다. 나는 가난한 노총각이다. 혼자된 어머니에게 매달 용돈을 보내드리지도 못하는 "있으나마나 한" 아들이다.
나는 호주머니에 돈이 있는 동안에는 돈벌이를 안한다. 그러나 건달은 아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미래가 하루 빨리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내가 원하는 미래란 별것이 아니다. 열심히 노동하는 삶들이 천대받지 아니하고 사람답게 사는 사회, 자기 생각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고 쓸 수 있는 사회, 평생을 눈물과 비탄 속에 살아가는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그리운 혈육을 만날 수 있는 나라, 강대국에 매이지 않고 우리 운명을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해나가는 나라. 이런 사회, 이런 나라가 바로 내가 간절히 바라는 미래인 것이다.
자신과 자기 가족만의 부귀영화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이런 나를 미워한다. 그래서 무슨 구실을 붙여서든 감옥에 잡아 가두려고 한다. 계엄령 위반이니 폭력 죄니 하는 내 전과는 그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뭐 별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6월에 수백만 국민이 했던 일들에서 보듯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매일 매일 하고 있는 일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내가 나를 설명하자면 대충 이렇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에 이렇게 살려는 뜻을 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내가 이 짧은 글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바로 여기에 대해서이다. 어째서 나는 오늘의 내가 되어버렸는가? 어째서 나름대로의 삶의 기쁨과 보람을 이런 생활에서 찾게 되었는가? 인간은 누구나가 복잡하고 독특한 존재이듯이 나도 또한 그렇다. 나는 여기서 나라는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도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다. 단지, 지난 십 수 년간이 사회가 나와 이웃에게 가한 억압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어떻게 내가 인간과 역사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런 생활에서 기쁨과 보람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