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지회 조합원 720여 명 중 반 이상은 여성조합원이다. 현재(7월 6일) 농성장 꿋꿋이 지키고 있는 조합원들 역시 여성이 많다. 3년 동안 임금은 동결됐지만 출산휴가 3개월을 마음 놓고 쓸 수 있고, 휴가 후에 복귀해도 내 자리가 그대인 회사. 사내커플이 결혼해도 남녀 모두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키울 수 있는 KEC. 여성조합원들은 회사가 아닌 노조가 지켜준 덕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전, 단수로 여성조합원들의 건강까지 우려되는 KEC 농성장에서 이진희씨를 만났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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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지부 KEC지회 이진희 조합원. | KEC 둥지에서 꿈꾸는 소녀
이진희(30)씨는 KEC 입사 10년째다.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던 진희씨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KEC에 입사했다. 당시 (주)한국전자였던 KEC는 진희씨가 다닌 상업고등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해주던 ‘이미지’ 좋은 회사였다. 상여금 880%에 급여수준도 만족스러운 회사를 진희씨는 기분 좋게 선택했다. 10년 직장생활은 기분 좋은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음을 증명해줬다.
KEC는 공정 이동이 많지 않아 내가 쌓은 노하우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는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쌓여갔다. 또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한 진희씨는 회사에 다니면서 전문대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까지 편입해 졸업을 마친 상태다. 정규직이어서 고용이 보장되고, 하루 8시간 근무하는 KEC는 그녀가 학업을 동행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KEC 사원증은 주위로부터는 부러움 샀고, 스스로에게는 자부심이었다.
쓰다버리는 부품이 아니잖아요
동료들이 좋아 출근길이 즐겁던 진희씨는 5년 전 충격적인 일을 경험하게 된다. 회사가 사무직 중 50여명을 장거리 발령을 내고, 책상을 빼면서까지 퇴직을 강요한 것이다. 결국 모두 정리해고 됐다. 진희씨는 애사심이 깊던 동료들이 왜 쫓겨나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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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6일 공장 앞 농성장에서 KEC조합원들이 저녁 집회를 하고 있다. | ‘회사라는 곳은 이런 곳이구나. 냉정하구나. 우린 어쩔 수 없는 부품이었구나’. 회사를 사랑했던 진희씨에게 이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이런 회사에 굳이 애사심을 가질만한가’라는 고민을 던져줬던 첫 번째 사건이었다. 하지만 10여 년 동안 쌓인 동료애는 변하지 않았다. 동료애의 힘으로 그 사건은 진희씨 마음에서 잊히는 듯 했다. 이번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배신감…솔직히 믿는 구석이 있었나봐요
2010년 임단협을 체결하기 위한 교섭이 진행됐지만 회사는 전임자임금지급금지와 반하는 단협조항을 빌미로 교섭을 해태해왔다. 이에 진희씨를 비롯한 KEC 조합원들은 6월 9일, 11일, 15일, 16일, 18일 파업을 진행하고, 21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회사는 불법파업이라며 28일 복귀하지 않으면 징계, 무노무임, 손배가압류, 용역투입 및 직장을 폐쇄하겠다고 통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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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C공장 앞 조합원들 농성장. 6월30일 공장에서 용역깡패들에 의해 쫓겨난 뒤 공장 앞에 '살림'을 차렸다. | 진희씨는 그때까지도 ‘설마’했다. 그러나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6월 30일 새벽 2시 남성용역들은 욕설과 성폭력을 저지르며 여자기숙사를 침탈했고, 정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그리고 7일째 회사 정문은 시커먼 용역들이 지키고 있다. 회사를 사랑했던 사원들을 상대로 회사를 지키고 있다. 7일 동안 동료 중 한명은 스트레스로 아이를 유산하고, 또 다른 이는 허리마비가 와서 실려 나갔다. 몸이 아파 집에서 요양 중이던 동료 한명 역시 또다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진희씨는 배신감이 들었다. 솔직히 믿는 구석이 있었나 보다. 큰 문제없이 유지되던 노사관계니까. 극단적인 수는 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나 보다.
여전사
농성장 생활은 즐겁다.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외치던 회사가 외치던 구호가 이제 정말 ‘회사 덕분에’ 한 가족이 됐다. 그러나 옆문으로 출근하는 동료들을 볼 땐 ‘사원들을 이렇게 이간질 시켜서 뭘 얻으려고 하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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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장에 밤이 왔다. 조합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승리'를 이야기 한다. | 사무직인 진희씨에게 농성에 참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5년 동안 함께 일했던 관리자로부터 “계속 농성할꺼냐”라 물으며 전화 왔을 때 진희씨는 당차게 이야기했다. “네 개인적으로 죄송하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아요. 5년 전 50명이 정리해고 당할 때 전 아무것도 못했어요. 다 같이 살려면 노조가 꼭 필요해요”
파업 후 관리자와 하루 8시간을 마주앉아 있어야 하지만 진희씨는 승리할 때까지 복귀하지 않을 생각이다. 진희씨에게 ‘승리’는 ‘정문으로 들어가 회사와 협상하는 것’, ‘1명의 해고자 없이 전원 복귀되는 것’이다.
우릴 너무 만만히 봤어
이제 진희씨는 안다. 회사가 가진 자의 탐욕을 장학재단이라는 아름다운 탈 속에 숨겨뒀던 것, 결국 경영진 마음대로 움직이는 노예로 만들 것이라는 것, 파업 후엔 구조조정의 수순을 밟아 비정규직화하려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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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30일 KEC지회와 기숙사에 난입해 조합원들을 폭행하고 끌어낸 사측 용역들. | 회사는 조합원들 특히 여조합원을 너무 만만히 봤다. 회사는 용역 좀 투입해서 겁주면 두려워서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소화기를 쏘는 용역들에게 부부젤라(응원도구)를 불며 앞으로 달려가던 것도 여조합원이고, 지회 간부들에게 피로회복제를 사들고 가서 힘을 주는 사람들도 여조합원이다.
솔직히 진희씨는 노동조합에 관심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지금도 지회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다. 하지만 진희씨는 노조가 없으면 우리의 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회가 유지만 된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얼마든지 바꾸면 된다고 말하는 쿨한 진희씨. 진희씨는 지회를 지키는 여전사로 오늘도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KEC 회사는 6월 30일 용역 300여명을 투입해 당시 농성 중이던 지회 간부 20여명과 기숙사에 취침 중이던 여성 조합원 100여명을 폭력적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회사는 용역들이 점거하고 있고, 조합원 470여명은 공장 정문 앞에 천막 20여동을 설치해고 농성중이다. 누가 봐도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겁에 질려있을 듯 한 상황. 하지만 KEC 정문 앞에서는 용역들과 즐거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편집자 주>
더 보여주세요
6월 30일부터 전 조합원 천막농성에 돌입한 지회는 아침 9시 전 조합원 집회와 저녁 7시 전 조합원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저녁 문화제는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첫날부터 노래방 기계를 가져다 놓고 2시간 동안 막춤을 추는 문화제. 술 빨리 먹기 대회, 장기자랑 등 조합원들의 기발하고 창조적인 문화제는 용역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장기자랑을 하던 문화제가 마무리될 무렵, 용역 한명이 대오를 향해 핸드폰 액정을 보여줬다. 거기엔 “더 보여주세요”라는 선명한 문자가 찍혀있었다.
용역도 장기자랑 한번 보여줘
용역도 즐겁고, 대오도 즐거운 문화제가 매일 밤 열리다 보니 문화제 시간에 교대하는 것을 용역들이 꺼린단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한 줄로 정문을 지키던 용역들이 유독 문화제 시간에는 줄을 맞추지 않고 빙 둘러서 문화제를 지켜본다. 심지어 팔뚝질까지 함께하는 용역들. 이에 질세라 대오는 용역들에게 외친다. “너희도 한명 나와서 장기자랑 해라”.
용역들, 대오에게 응원하며 이탈자 늘어
용역들에 대한 에피소드는 대오들의 즐거움과 하나의 희망이 되고 있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용역은 “힘내세요. 꼭 승리할 겁니다”라며 응원을 해주는가 하면,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즐거운 농성장 처음본다”며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돌아가는 용역도 있었다고 한다. 6월 30일 여자용역 100여명이 함께 동행했었는데 그 중 한명이 울면서 말했단다. “미안해요. 일당 몇 십만 원 준다기에 왔는데 이런 건지 몰랐어요”라며 그 용역은 결국 이탈했다.
용역 이탈자는 이 여자용역 뿐 아니다. 구미 터미널에 KEC가 새겨진 검은 색 옷과 가방을 맨 용역들이 줄지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일 때면 어김없이 비슷한 수가 충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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