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빈깡통이 요란하다?
누구는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고도 했습니다.
완장이라는 말이 왜 상대에게 비아냥으로 만 보일까요?
지명직인 공직을 국민이 지명하는 제도가 지방 자치입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일때는 완장 못 찰 사람들이
국민의 힘으로 완장을 찼습니다.
소외된자 ,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주민 소환제가 있지만 자격 요건이 엄청 까다롭더라구요....
어떤 법보다 제도보다도 목민관이 되고져 했던 자의 양심과
도덕의 문제입니다.
가지지 못한자, 사회적 약자가 마냥 이상 세계를 꿈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한가닥 기대는....
그 한가닥의 희망이라는 기대마저 해소하지 못한다면....
완장을 차는 내면에 존재했던 오만과 독선이
한번찬 완장을 평생을 보장받는 기득권을 만들려 하는 조바심을 흔하게 봅니다.
상대의 선의가 자신의 맘이 검은색이니 선의로 보이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완장에겐 견제와 균형도 배부른 소리가 된 지 오래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 무개념으로 넘어 가려 합니다.
상가집에 가서 실컷 곡하고는 누가 죽은 겨!! 하는 행동을 안하무인으로
해댑니다.
누가해도 똑같아! 하며 현실에 안주합니다.
why? 완장만 차면 소위 자신이 춥고 배고팠던 시절조차 나 몰라라? 급속하게
잊혀질까요?
완장과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잘되라고 하는 경고를
드러내 놓고 인정하지 않더라도 내면에 남아 있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자신의 애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알량한 애비로서의 양심이 있다면
자신에게 다그치거나 쓴소리로 하는 소릴 제대로 듣지는 못해도
당신들의 지적은 허위, 비방이라 말할 수 있도록 한가지라도
제대로 실천하고 쓴소리가 견제가 되어 완장의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을 되돌아 보고 공약하고 약속했던 일들을 완벽하지는 않아도 하나씩 실천하고
챙긴다면 완장을 견제하려는 분들이 내심 충분히 이해할 것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꾸준히 어찌보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쓴소리와 행동을 하는
끊임없이 제기하는 힘의 원천은 기득권을 가진 완장이 깜짝 놀라 말하는 완장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초심을 잃고 갈팡질팡하며 헤매는 완장에
대한 잘하라는 채찍질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행여나 느낄 줄 아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익은 알곡이 고개를 숙이고
빈깡통이 요란합니다.
완장의 노예가 된 모습이 안타까워 쓴소리하는 취지를 늦게나마 알아 듣는 자는
결국 완장의 노예라는 구태에서 해방되고 자신 스스로 완장을 즐기는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완장도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만든 법과 제도의 노예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거듭나는 인간미 넘치는 만물의 영장이 되는 홀로 서기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지켜보는 맘이 꾸준함과 은근과 끈기로
행동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