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갈래 길이 있습니다.
세 장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얼굴 위에 판박이를 붙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한국사의 상징 장소 입니다.
많은 일들이 여기에서 이루어졌고
기념식, 콘서트, 전시회, 출판 기념회
어떤 의미에서는 여기에 선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서 공식적 인정,
그 보르드웨이를 넘어서서, 카네기홀을 넘어서서
명예의 전당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현대사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몇 달 전 박노해 시인의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달포 전인가 정주영 회장의 10주기 추모 사진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우연히 그날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그 근처를 지나다가 삼일절 기념식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온다는 소리에 주머니 과도가 든 것도 모르고
볼 거라고 다가서다가 경호원에게 밀려
박노해 시인, 정주영 회장 회고전이 열리는 지하가 아니라
이층 전시회장에 들어가서야 신문지에 만 칼이 생각나서
식은땀을 흘리며 멀어졌던 곳도 세종문화회관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알자면 친구를 보면 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알자면 조상을 알면 된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 사람을 알자면 살아온 내력을 봐야 비로소 알았다고 말하라는 소리도 있던가요?
박노해 시인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한 시대 치열했고, 존경하는 선배이고, 글 빚을 진 기분이고.
전시회는 삼천 원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대관료를 하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알바인지,
존경으로 모인 순수한 팬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배울려고,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배우고, 믿는 덕분인지
친절하고, 그냥 이웃집 잔치에 온 것 같았습니다.
아니, 상가집에 왔다고 해도 됩니다.
상가집이나 잔치집이나 주인공보다야 들놀이에 의해서
그 분위기가 전해집니다.
주인공의 실수라든가, 기억에 남은 무슨 에피소드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정주영 회장 추모회고전이 있었습니다.
예언은 이렇게 들어맞습니다.
공짜일 것이다.
공짜였습니다.
그러나 아쉬웠습니다.
알바인지, 가족인지 모르지만 살가운 무엇이 없고
사무적인 것 같았습니다.
내가 언론을 통해 접한 2 세대분들은 한 분도 없고
아마 3세대도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월은 변했고, 조상 추모도 후손은 없고
돈 주고 남을 대행시키는 시대 당연하게 되었지만
그걸 받아들이기엔 저는 너무 옛사람인 것 같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작품은 낮설었습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그것이 우리 민중들의 삶이고
우리들의 모습이지만
이 낮설음이 또 다른 세계로, 또다른 상상으로 이끌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거였다면
정주영 회장 회고전은 익숙했습니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많이 접한 모습,
우리의 모습이었고, 우리의 과거였습니다.
박노해 시인도, 정주영 회장도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박노해 시인은 혁명의 시인,
박해받는 노동자를 위했던 시인으로 남았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부자로 남았습니다.
잘사는 노동자, 아니
부를 가진 사람 중에 노동자 입장을 많이 이해할려고 했던 분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노무현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입니다.
저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입장을 가지실 것입니다.
저는 위의 두 분,
박노해 시인과 정주영 회장의 중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혁명가도 아니고, 성공한 회장도 아니고
패배한 정치인 노무현,
민심이 있습니다.
좌측 통행, 우측통행 상식이 아니라
감자가 남으면 감자가 만병통치약이고
고구마가 남으면 고구마만 먹어도 백이십 살까지 가쁜히 건강하게 살 수 있다가 아닌
민심의 상식이 있습니다.
지금 그 결정의 순간에 우리는 다시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두 분은 이미 유명을 달리하셨고 한 분은 활동을 하시지만
단어를 놓고 보면 달랐던 이 셋을 포용할 수 있는 그 무엇
각자의 존경과 미움의 세월이 한 십 년,
삼십 년 흐른 뒤에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우리 모습은,
우리 한민족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한민족에게 편지를 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