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여러 님들과 막걸리 한사발 마시며 편하게 첨맘님의 정계은퇴(직업 정치인으로서 사퇴)를 이야기하게되면 하고팠던 말입니다.
국민참여당, 통합진보당을 거쳐 정계은퇴까지, 그리고 '그가 결코 민주당과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들'을 저는 아래의 글 속에서 찾습니다.
아래의 글은 2009년 그 날 이후 제가 첨맘님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근간입니다.
<<서울역 분향소에서 내 귀에 대고 낮고 강한 목소리로 속삭인 시민들이 있었다.
“복수합시다!” “복수해 주세요!” “꼭, 복수할 겁니다!”
그들에게 정말 복수해야 하는 것일까? 마음을 먹는다면 복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복수가 될까? 그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이 질문에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복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또는 하고 싶어도 복수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그들과 화해해야 하는가? 그가 정치 생명을 걸고 추구했던 ‘국민 통합’이 그런 사람들까지도 껴안는 것일까? 화해하기로 마음먹으면 화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화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도 아직 대답할 수 없다.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대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가 남긴 말과 글을 정리하면서 끊임없이 자문해 보았다. 그는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가? 나는 그와 어떻게 작별해야 하는가?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 꿈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 꿈이 결국 그를 부엉이바위에 오르게 했다. 5년 동안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꿈 많은 청년’이었다.
2009년 5월 23일 아침 우리가 본 것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라 ‘꿈 많았던 청년의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우리 민주주의의 청춘이었다. 양김 분열과 3당합당,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거치며 모두가 중년으로 노년으로 늙어 가는 동안, 그는 홀로 그 뜨거웠던 6월의 기억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살았다. 잃어버린 청춘의 꿈과 기억을 시민들의 마음속에 되살려 냈기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대통령을 마친 후에도 그는,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었다. - 운명이다 347쪽(에필로그)>>
더 이상 선거나 기존 정치의 틀에 메여서 '정치인 유시민'을 붙들지 말고, '청년 유시민'의 자유로운 행보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함께하는 데에 시민광장의 힘을 쏟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곧 선거철이라... 그냥 뻘소리 하나 보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