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나면 그 달 마지막 주 일요일, 나는 무주 용포리 강에 간다. 서울 종암동에 있는 조그만 암자 절 수덕사 스님과 처사,보살들과 함께 가는건데 올해가 17년째다.해를 거듭할 수록 이 연례 행사가 내게는 힘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방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서 만들고 모방송국 부처님오신날 특집으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그런 인연으로해서 종암동 수덕사 절간에 17년째 적을 두고 있다. 사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다. 우리 나라 종교는 유별나게 기복으로 흐르는 양상이 심하다. 유일신을 섬기라는 개신교도 그렇고, 천주교도 그렇고 기도를 들어보면 뭐 해달라하는 소원 비는 것 그 이상이 아니다.사실 내게는 성인인 예수, 부처, 마리아, 그들의 인간적 고뇌와 인간해방을 위한 삶이 좋은 것이지 이렇듯 기복신앙으로 치우쳐서 나약하게 존재하는 인간 군상을 두려워 했던 탓이다.종교라는 거대한 처소는 내게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렇다지만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내가 어떤 영향을 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평소에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 뿐이다.누가 내게 종교 유무를 물어보면 내 대답은 '다 믿어요' 이렇게 넘어가곤 한다. 다분히 정치적으로 말이다.
불교는 살생을 금하는 것을 교리(?) 중에 으뜸으로 한다. 그러나 살생을 금하는 것은 소극적 선행이고, 억압과 부자유의 늪에 있는 생명을 살려내는 것은 적극적 선행일 것이다.불교에서 행하는 방생은 그 유래를 <금광명경, 유수장자품>에 두고 있다. 유수장자와 그 아들들이 연못에 물이 말라 죽어가는 물고기들을 살려내어 도리천에 들게 했다는 내용이다.방생은 비단 축생에만 해당되지 않는다.현대 사회에서는 인간 방생 또한 여러면에서 의미를 주고 있다.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자원봉사도 큰 방생이아닐 수 없다.
어찌보면 절간의 방생은 미신적인 요소도 많고,기복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뜻은 좋지만 자칫 생명에 대한 경솔함이 따르고, 환경적인 문제를 유발한다해서 일부에서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이 점 때문에 적잖이 고민하면서도 17년째 참여하고 있다. 그 이유를 오늘 진지하게 내 자신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생각하지 못한 어느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가는 곳은 자연이며, 그 자연 속에서 마음을 비우려고 무던히 노력 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강물과 대화 했고, 심지어는 미꾸라지하고도 얘기를 나눴다. 겨울 강에 외롭게 떠서 객을 기다리는 뗏목과도 안부를 주고 받았고, 무수히 많은 풀꽃들과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혹은 꽃말의 내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간이 어쩌다 지능이 높아서 문명 문화를 이루고 사는 것 뿐이지 그들의 세계도 인간 못지 않은 사회가 있다는 것을 안다. 생물은 생물로서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비록 인간에 의해 도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사물들 자체도 그 존재의 이유가 있다.
이번에 무주 용포리 강가에서 나는 흐르는 강물에게 조용히 따져 볼 것이 있다.'너는 17년째 어떻게 그 모습 그대로 존재 하면서 강물로 흐르는 것이더냐' 꼭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