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문학광장 날적이에서 함께 입력된 조이풀님의 글입니다. |
지난 주 토요일 아침 강릉 초당 마을 순두부 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강릉 사람 태목님의 단골식당인 모양인데 주택은 지붕이 함석인걸 보니 내 나이 쯤은 되어 보인다. 민가를 요식 식당으로 개조하고 방을 세 개로 나눠서 손님을 받고 있었다.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마당 안쪽 가축 우리처럼 만들어진 '두부소'(두부 만드는 곳)에 있었다.
물에 불린 콩, 박 바가지, 두부 틀, 간수 통, 큰 가마솥, 전기 맷돌. 나는 어느새 사십년 전 어린 기억과 함께 있었다. 우리 집은 담양 창평 마을에서 두부를 만들어 잔치집, 장터에 내다 팔았다. 장날에는 두부 한모 사려는 손님들이 줄을 섰고, 잔치집에 배달 간다고 하면 나는 꼭 따라 나섰다. 아버지의 솜씨는 서울 가면 큰 돈 된다고 해서 칠십오년 십일월 삼일 서울 금호동으로 이사를 하게된다. 그 때 나는 열살이었다.서울에서 아버지의 두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약수시장에 공장을 두었는데 생선 비린내가 스며든 지하수를 쓰다보니 우리 두부에서도 비린내가 났고 손님은 찾지 않았다.
서울에서 이사를 몇번이나 했나 하고 세어 본적이 있다. 전에는 등초본을 떼어보면 나와 있었는데 결혼 전까지 열두번을 이사했다. 이사 할 때마다 나는 두부 간수 젓던 막대기와 박바가지는 꼭 챙기고 다녔다. 저게 없으면 아버지의 기억을 잃을 것 같아서였는데 진짜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기억을 강릉 초당마을에서 찾아가고 있었다.가을 황금 햇살 속에 마음이 순두부 간수처럼 둥둥 떠 다니는 날이었다.
창평장昌平場
이 길 어딘가에 과꽃이 피고
아홉 살 소년이 있었다
곡예단 줄 타기 소녀
국화빵 최선네 할멈
장터 너른 마당에 서면
아하 아홉 살 내 고향
누런 햇볕에 가오리가 말라가고
신문지에 둘둘 말린 고기 한근
둥둥 큰북 등에 진 방울 장수
산골 물골 평지 사람들이
세상 온갖 것들 불러모아 놓고
한 날 잔치를 벌였다
‘아야 시방 무신 돈비락 맞것다고 되박질이다냐.
고봉으로 줘뿌리랑게’
순창 남원까지 소문 난
싸전 학동댁 큰어머니 목소리는 학교 운동장만 했다
농약 먹고 죽은 재 너머 아제
‘요상한거시 뒤지고나니께 둘씩이나 나왔당게.
서방도 없는디 뭣에 쓴다요. 팔아서 아그들 공부나 시켜야제’
아짐은 그리 말하고
우엉우엉 울던 쇠전 암송아지 울음 소리와 함께
마을을 떠났다
‘아야 니가 그 아그다냐, 잉’
운 좋은 날은
곡예단 줄타기 소녀와 안개 속에서 숨바꼭질 하던
내 아홉 살 창평 오일장
(1996. 10 고향길 문화기행)
이 시는 96년 mbc-tv 고향길문화기행, 방송작가 할 때 쓴 시인데 마침 10월이고, 유년의 기억이 있는 시라서 함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