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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연花煙
올해는 봄이 시작되고 제법 많은 봄꽃 나들이를 다녀왔다. 지리산 산수유, 여의도 윤중로 벚꽃, 개운산 개나리, 4월 둘째 주 주말은 어디를 가나 봄꽃 행락객들로 꽃 반 사람 반이었다. 산수유, 개나리, 벚꽃, 목련, 철죽... 그래도 이들은 봄이 되면 이름값을 하는 꽃들이다. 대접도 융숭해서 꽃 피었을 때는 축제가 있고, 꽃 지고 난 후에도 목 좋은 자리까지 내주어 사철을 나무로 지내게 한다.
이 시기 지난 십여년 동안 나는 이 꽃들을 외면하면서 지내왔다. 반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월과 오월, 봄이 되면 스멀스멀 선민의식 같은 것이 마음 한켠을 차지하곤 한다. 4월 혁명, 5월 광주, 이러한 역사에 대한 예의라고 해야할까. 봄이 되면 마냥 좋아할 수 없는 봄꽃들이 내게는 슬프게 피고지고 했던 것이다.
꽃축제가 열리는 이런 날도 대학로 어느 소극장에는 관객 없이 배우만 열연하는 무대가 있을 터였다. 파지를 줍는 동네 어르신은 여전히 골목길을 누비고 계실테고, 한식날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아버지의 산소에는 야생화 하나 피고 있을테다. 고2 아들 재윤이는 진학과 무관하게 친구들과 밤을 어울렸을테다. 처가에 간 아내는 남편이 밖에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밥이나 먹고 다니는지는 관심이 없을 것이었고, 오로지 공과금 고지서 챙기는 것, 대출금 이자 연체 안 하는 것, 이 생각이만 하고 있을 것이다. 대선 30일을 코앞에 남겨놓고 진실과 정의가 승리해야 한다고 믿고 나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동지들은 지혜 짠답시고 골머리 아플테다.
어러한 봄날이 정치에 몸 담아온 지난 십여년 동안 해마다 반복되어 왔다.어느 해 봄날에는 ‘이게 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야’ 했다가 ‘누구 때문이긴 누구 때문이야. 내 자신 때문이지’ 이렇게 체념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내게는 봄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마치 나와는 무관한 풍경정도로 여겨왔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봄꽃을 즐길 수 없었던 이유가 다른 곳에 있음을 오늘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 4월이면 나는 나의 생업을 위해 매우 이기적이다. 제빙기라고 하는 얼음 만드는 기계를 팔기도 하고, 건설현장이나 산업현장에 대여를 해 주고 있는데, 지금은 이 기계들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더운 여름철 보다는 여름 더위를 준비하는 시기가 지금같은 봄날인 것이다. 거래처들 전화하고, 견적서 보내고, 때론 방문해서 상담하고, 기계 수리하고, 세척하고, 창고가 포천에 있고, 회사가 서울이다보니 왔다갔다 정신 없는 시기가 이 시기다. 지금부터는 전화 통화량이 부쩍 늘어난다. 대부분 제빙기 설치 때문에 오는 전화이기 때문에 이 통화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일년 수입이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는 무슨 일이든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그 하나의 일에만 집중했다. 책임감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봄꽃이 피는걸 보면서는 생각을 조금 바꿔 보기로 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꽃인데 나도 같이 좋아해야 겠다는 것. 그리고 무엇이든 사람을 상대해서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이기에 제빙기 영업 열심히 하는 것이 결국 나를 이기는 것이라는 것. 내가 열심히 하다보면 나를 관계하는 분들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실 것이라는 것.
세상이 이렇게 조화를 이루어 갔으면 하고, 오늘같이 꽃 향기 가득한 날에는, 꽃들이 자욱한 안개 연기처럼 일제히 아우성이는 날에는 제빙기 영업이나 열심히 해야겠다. 5월에는 ‘그가 그립다’ 그 노래가 더욱 마음에 와 닿도록 지금 최선을 다 하자는 것이다.
2017.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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