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눈팅만 하다가 ^^; 참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많이 부끄럽고 또 민망한 글...횡설수설이지만...잘 읽어주세요 :)
수줍은 고백
장면 하나.
“진지하고 과묵한 성품이나 또래 급우들과 두루 어울리지 못함. 책을 즐겨 읽으나 독서 취향이 편향적임. 수학 과목 성취도는 낮으나 국어와 역사 시험 성취가 높으니 관련 진로와 진학을 고려해 볼 것.”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담임이 남긴 기록은 꽤 정확했습니다.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서와 견해를 공유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일. 제겐 지독히도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사람이 무서웠고 세상은 낯설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도서관을 즐겨 찾았습니다. 글자에 천착했습니다. 늘 책 속으로 도망치는 어리석은 소년에겐 묵직해서 두고두고 읽을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기나긴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서가를 이리저리 헤맸습니다.
그리 어렵지 않게. ‘묵직해서 두고두고 읽을 책’을 찾았습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우주의 탄생, 별의 찬란함과 아름다움, 역사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억겁의 시간. 그에 비하면 찰나에 그칠 우리네 삶이 슬펐습니다. 슬픔과 누워있자니 버겁고 번거로워서 밀어냈습니다.
“에이, 찰나면 어때. 주어진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야지!” 혼자 다짐했지요.
제 나름의 어설픈 작별이었습니다.
장면 둘.
2009년 5월 23일. 그 화창하던 봄날. 어느 씩씩한 청년 하나가 제 심장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와 문을 두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습니다.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정치를 알게 되었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제게 주저하지 말라고,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더 민주적인 곳으로 바꾸는 일에는 나이도,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준 용기의 편린이었을까요.
지금 사람들이 저를 생각하며 떠올릴 많은 단어, 외향적, 적극적, 주장이 강함,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함, 학생회장 출신 따위의 단어가 그렇게 직조되었습니다.
그때 작가님도 제게 왔습니다. 청년의 육신이 하늘과 별과 사람들의 마음으로 돌아갔다는 작가님의 말. 초점이 그 문장에 이르면 아직도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하고 흐릅니다. 주책없이. 적어도 제겐 노무현과 유시민이 이음동의어였나 봅니다.
장면 셋.
성큼성큼 자라난 작가님을 향한 마음.
언젠가 작가님도 코스모스를 즐겨 추천하는 모습을 보고 기뻤습니다. 몸에 짜릿한 전류가 흐르는 기분이랄까요. 코스모스를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무게 1002그램, 네모나고 반듯한 종이책을 자주 쓰다듬었습니다. 책을 쓰다듬다가, 궁금했습니다. 지구 행성에서 스쳐 지나가는 시간은 이리도 짧은데 왜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고 싸우는 것일까. 서로 사랑하기만 해도 부족한 것은 아닐까? 왜 그 청년은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국가를 향한 제 나름의 지적 항해가 시작됐고, '국가란 무엇인가'를 만났습니다. 시민은 자유롭게, 국가는 정의롭게. 짧은 시간에 지구 행성을 다녀가는 만큼, 내가 발 디딘 곳을 더 좋은 공동체로 만들 의무가 제게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장을 넘기며 좋은 국가란 무엇일까, 어떻게 만드는 것이지? 질문을 던져보았던 모든 순간이 제겐 최고의 독서경험이었습니다.
내게 노무현을 제대로 알려준 사람. 별의 아름다움과 국가의 역할을 알려준 사람. 유시민 작가님을 처음 뵈었던 게 중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제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신 순간. 잊을 수 없어요.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유 작가님! 기억하세요? 고등학생 때 자주 인사드렸는데... 대통령님 6주기 때 추도사 읽었던 그 덩치 좀 큰 학생! 저 이제 국회에서 일해요. 훌륭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궁금증은 더 늘어만 가요.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고 야수의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 왜 이리 험하지요? 자신의 주권을 능동적으로 행사하는 시민. 그 시민이 개개인을 거대한 국가계획의 수단이나 경제발전의 도구로 삼지 않는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거! 맞죠? 에잇, 저를 이렇게 만든 작가님! 밥 한 번 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