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부터 버릇이 생겼다
내가 사랑하는 조국이 모순으로 물들어 질 때 쯤이면
살며시 핸드폰 바탕화면에 있는 유투브에 들어가
작가님의 토론영상을 본다.
얼룩져버린 우리 사회에 밝은 빛을 내는 그의 말에
모순투성이로 변해버린 우리 조국이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게된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내게있어 작가님의 첫 기억은 TV 속 모습이었다.
어릴때 부모님이 보시던 토론 프로그램 속에서 얼굴을 붉히시며 토론하시던 모습.
당시의 이해하지 못했던 그의 분노섞인 목소리.
그 이후 오랫동안 내 삶 속에서 유시민 작가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찾지 않았다.
뒤에 서술하겠지만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후,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나면서 정치에 그리고 조국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감사하게도 작가님은 TV에서 나를 다시 맞아 주셨다.
환한 얼굴로 나에게 민주주의와 국가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그 이후 작가님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항소 이유서"를 처음 접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항소이유서를 읽을때는 그 글의 우수성을 잘 알지 못 하였다
그만큼 부족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 조차도 작가님의 마지막 문장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1800년대 러시아에 살았던 니콜라이 알렉세예비치 네크라소프의 시구
외국에 오랫동안 살았다는 핑계로
아직 어려서 나와는 상관없다는 핑계로
조국의 사정에 관심두지 않은 나에게 작가님이 준 메시지로 들렸다.
이후 내가 찾은 작가님은 이런 사람이다.
20대때는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30대가 되기전에 정치의 발을들여
40대때는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50대는 선거에 도전해 조금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한 분이셨다.
중간 중간 토론 진행자, 베스트 작가 등 많은 직업을 가진 그
현재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작가라는 직업으로 돌아간 그
그 자리로 돌아온 후 그는 나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가 나에게 던진 메세지는 나의 정치 철학이 되었고
그가 쓴 글은 내 지식의 자양분이 되었다.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싶다.
조국에 무관심하던 한 학생을 이끌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하겠습니다.
그가 현재 이나라의 대통령을 도우려는 방법으로
개개인의 시민이 참여하는 방법으로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쏨씨
배워야 할게 많은 내 지식이지만
또 다시 지리적 위치로, 내 부족함을 핑계로
우리 작가님을 슬픔에 잠기게 하고 싶지 않다.
저와 함께....
시민들과 함께....
아픔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천국에 계신 "그"가 웃음지을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