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문학광장 글마당에서 함께 입력된 조이풀님의 글입니다. |
무제無題의 서가書家
오랜만에 책장을 마주하고 선다. 머리가 든거 없이 텅 비어있다고 여길 때는 이렇게 책장 앞에 서곤한다. 손때를 많이 타야 책장다운 모습일텐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빛바랜 정도, 원목에 칠한 니스가 시간을 거스리지 못하고 거무튀튀 색바랜 정도, 오늘따라 유별나게 궁색해 보인다. 주인을 기다리던 책들도 예전같지 않게 시큰둥이다.
꽂혀있는 책보다 누워있거나 구석에 처박힌 책들이 많아진다. 주제별로 구역을 정하고, 작가별, 연도별, 나름 질서있게 책 정리를 해왔는데 최근 수년간은 그렇질 못했다. 읽는 것도 대강 훝는정도, 내지 여백에 언제 어디서 구입했고, 읽고난 소감은 어땠는지 메모하고 이름 석자 적어놓는걸 잊지 않았는데 언제 그렇게 했는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경험하라. 책장 위에 큼직하게 써놓은 글귀가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항의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 시간들을 질책한다.
한때 나의 책장에는 세미클래식 잔잔한 가을이 있었고, 향기나는 찻잔이 있었다. 제목만 보아도 인문교양이 넘쳐났다. 돌아가는 시침이 아깝지 않게 책장과 대화를 나누었다. 밤이 깊으면 책을 베고 그대로 잠들기도 했다. 그 잠 속에서는 책에 나오는 내용대로 꿈을 꾸기도 했다. 우주 별자리에서부터 야생 식물 생태계까지, 그리고 출판사별로 경쟁하면서 시리즈로 발행하던 시집들이 있고, 이상문학상 전집이 있다. 내가 가진 재산 중에 제일 으뜸이 책이라고 여길 때가 있었다.
책장 한쪽 구획은 아직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로 남아있다. 언젠가는 내가 쓴 책으로 그 곳을 채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기만 했다. 아무것도 한게 없다. 핑계와 변명만 늘어가는 일상이다. 게으름은 아닌 것 같은데 권태도 아닌 것 같은데 책 읽기가 부담스러워진다. 읽으려고하면 노안처럼 활자들이 움직인다.
나는 최근 출판 밥을 먹고 사는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친구이고, 한 사람은 두어살 아래 후배다. 친구는 영화로 만들어진 ‘여고괴담’ 작가인데 평소에 내고 싶은 책이라며 기획안을 보내왔다. ‘서른살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을 달았고, 내용은 ‘항소이유서’(유시민), ‘서른살 사내의 자화상’(유시민), 창작과비평 1988년 여름호에 발표된 중편소설 ‘달’(유시민)이다. 친구는 30년 넘게 유시민작가의 초판 책과 글들을 모아왔다고 하면서 이 책이 왜 필요한가를 이야기 하는데 열의가 대단하다.
‘저자가 유시민이잖아. 동의 하시겠어?’
후배는 출판계가 단군이래 최대의 불황기라고 하면서 ‘유시민작가 추천사 석 줄만 받아줘’ 떼를 쓴다. 천재들의 컬러링이라는 부제를 단 토마스캐빗의 팝아트 책을 내는데 유시민작가 추천사가 달리면 마케팅에 큰 반향이 있을 것이라 한다. ‘이 책이 인문학이나 철학, 문화, 역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 말해 줄 수 있어?’ 한참 고민하던 후배는 ‘요즘 혼족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잖아요. 혼족의 놀이 문화, 그 문화를 개척하는데 일조한다, 그렇게 생각 하시면 되요’ 후배는 이 논리로 이외수선생과 류근시인을 꼬신 모양이다. 이제 유시민작가만 꼬셔서 추천사 달면 베스트셀러 되는건 시간문제라며 의기양양해야 하는데 ‘ 써 주실까요?’ 소침하다.
지난 여름은 우기처럼 비가 내리고, 사나흘 연이은 비가 그치더니 도시의 하늘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높고, 파랗고, 구름은 푹신한 솜이불처럼 몰려다니고,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북쪽 산 삼형제들은 밖으로 나오라고 유혹한다. 가을이 성큼 내 책장에 다가왔다. 책장의 책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가을을 위해 서점에 간다.
2017.8.27